억눌리는 노동기본권
이원보(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시민일보
| 2007-03-25 19:32:21
산업자원부가 노사관계TF를 구성했다는 사실이 며칠전 매일노동뉴스에 보도되었다. 구성 목적은 ‘노사관계 안정화’이고 분기별로 정기 또는 수시로 열리는 회의에는 산자부 관리들과 경제단체에 12개 업종별 협회, 단체들이 참가한다고 한다.
TF에서는 업종별 노사관계 동향을 파악하여 법과 원칙에 따라 발빠르게 대응함으로써 사전적 예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노사관계 주무부서도 아닌데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하자 산자부는 전에부터 있었던 조직을 체계적으로 강화한 것 뿐이라고 가볍게 답하고 여기서 나온 의견을 높은 선의 회의에 전달하며 “노동부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사항들도 먼저 알려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 어려운 중요한 지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힘센 부처 관료들의 삐툴어진 발상이 노동기본권을 억누르고 노사관계 발전을 크게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자부 TF는 경제단체가 참가한다는 점에서 정경유착의 한 유형이다. 노조 참석 없이 논의되는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이 얼마나 사용자쪽으로 치달을지는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힘센 부처의 잘못된 노사관계 시각은 전교조에 대한 교육부의 태도에서 자주 나타나지만 행자부의 전횡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행자부는 합법 등록을 거부한 전공노 지부사무실들을 강제 폐쇄하고 숱한 간부들을 징계한데 이어 지난 1월말에는 ‘재난 안전기본법’에 따른 국가기반시설 지정안을 예시하였다.
여기에는 대부분 재벌기업에 속하는 9개 분야 896개가 망라되어 있었다. 이로써 우리나라 공익기업 노동자들은 노동법으로 파업권을 제약받고 민간 대기업 노동자들은 재난 안전기본법으로 단체행동이 무력화되는 지경에 처한 셈이 되었다. 이 안은 지난해 어렵게 이룩한 노사정 합의를 뒤엎는 것이라는 반발이 격해지자 잘못 이해된 것이라고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지만 언제 다시 나타날지 알수가 없다.
노동운동을 봉쇄하려는 도발적인 발상과 공공연한 정경유착은 어디서 오는가? 오랫동안 권위주의 독재권력 아래서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성장신화에 길들여진 관료주의 발상이 뿌리에 있는 것은 아닐까? 본분에 충실하려는 대부분의 선량한 관리들 위에 효율·성과·충성의 논리가 군림하는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일은 노사간에 균형되고 합리적인 정책감각을 가질 수 없게 한 우리 역사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혁명을 통해 시민의 요구, 민중의 힘이 무엇인지를 경험하지 않은 관료사회, 개혁도 과거사 청산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국민기본권에 바탕한 공복 의식을 갖추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아마도 관료사회의 뼈를 깎는 자정 노력과 노동의 힘이 아닐까 싶다.
공무원노조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되지만 노동조합 조직율이 30%를 넘고 민주노동당이 정책결정의 지렛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제멋대로 노동을 무시하고 짓밟으려는 행태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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