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벤을 향해 (5)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4-01 18:23:55
마가렛이 다트포드의 보수당 입후보자 선정위원회에 입후보자로 신청했을 때 신청자는 전부 24명에 달했다. 마지막에 그녀를 포함하여 3명이 남았는데 나중에 그 3명 모두 보수당 의원이 되었다. 선정위원회의 눈이 얼마나 공평하고도 우수했는지 알 수있다. 어쨌든 그녀는 위원들 앞에서 보수당의 바람직한 방향과 보수당입후보자로서 선거구민에게 호소해야 할 것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해 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전쟁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기는 아직 여성의 사회 진출도 여권도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위원들 중에는 이 여성의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간파하는 안목을 갖춘 사람도 있었다. 전형위원회는 비정상적으로 오래 걸렸다. 마침내 그녀가 차기 총선거에서 보수당 후보자로 결정되었다. 23세의 여성에게 걸어보자는 정치적 실험을 요구하는 기분이 다수파를 제압한 것이다. 드디어 영국에서 가장 젊은 여성 후보가 탄생되었다. 마가렛 로버트가 처음으로 정치의 세계에 몸을 던진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선거용 팸플릿을 배포하거나 후보자를 위해 연설을 하거나 하는, 어디까지나 정치 세계의 조연에 불과했다. 이제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었다.
정치의 세계에 정식으로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장애가 너무 많았다. 다트포드 선거구는 런던으로 가는 통근 지역이며 경공업지대이어서 노동당의 지반이었다. 게다가 현직인 노먼 도즈(Norman Dodds) 의원은 인기가 높으며 선거에 능숙하다는 평이 있었다.
1949년 2월 28일 마가렛 로버트를 공인하기 위한 보수당 다트포드 지부개편대회가 열렸다. 그녀는 당원들에게 보수당이 받드는 자유에 대해 솔직하고도 거리낌없이 말했다. 당원들은 거기서 새로운 여성의 등장을 보았음에 틀림없다. 단 한 명이 반대했을 뿐 대회장의 전원이 그녀의 공천에 찬성의 손을 들었다.
그날 밤 주요 멤버들의 디너 모임이 개최되었다. 마가렛은 여기서도 주역이었다. 그녀는 이날에 당 대회에 대해 논평하여 참석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신선한 젊은 여성의 등장으로 이 선거구의 보수당은 확실히 뻗어날 것으로 참석자 누구나가 확신하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무르익은 영국에서 어째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마르크스의 이론 그 자체에 미비함이 있었던지, 영국이 특수한 국가라 불만이 폭발함에 이르지 않았던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그 둘다 맞을지도 모른다. 계급제도의 멍에가 강했고 빈부 차이가 확대된 근대 영국 사회이지만 불만이 폭발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불만분자가 미국이라는 새로운 대륙으로 건너갔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그 이외에도 사회 속의 우수한 사람을 지배계급으로 받아들이는 ‘가스 빼기’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돈은 없더라도 머리만 좋으면 공립 그래머 스쿨에서 장학금이 나오는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유능한 자는 리더가 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처칠이나 맥밀런처럼 상류계급 출신자가 정치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히스, 윌슨, 대처 등 중산계급 출신의 지도자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능력 있는 자를 흡수하는 이 장치는 계급제도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회가 체제 유지를 위해 새로운 공기를 불어 넣는 송풍기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신선한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낡은 제도를 바꾸어 간다. 그것은 정치적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불만이나 비판을 흡수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보수당이 23세의 여성을 하원선거의 후보자로 뽑은 것은 송풍기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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