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天地는 곰이다

김 형 오(한나라당 의원)

시민일보

| 2007-04-02 19:51:57

{ILINK:1} 지금은 많이들 가봐서 덜하지만 그래도 ‘백두산’하면 여전히 우리민족에겐 가슴 설레는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백두산 천지를 사진으로 보며 남다른 감동을 받았다. 아버님께서 젊은 시절 동료들과 백두산을 등정한 모습을 담은 빛바랜 사진첩은 우리 집의 가보요, 동네의 자랑거리였다.

아버님은 해방될 때까지 만주에서 활동하셨다. 백두산 가는 길의 자연온천이며 야생화 군락지, 밀림같은 백두송(白頭松), 백두의 설봉에서 천지를 배경으로 한 아버님의 늠름하던 모습... 이런 것은 세월이 흘러도 나의 뇌리에 진하게 각인되어 있다.

의원회관 내 방안에는 백두산 천지 사진 두 장이 걸려 있다. 하나는 지난 ’98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남북공동사진전시회 때 출품된 것으로 겨울철 천지를 측면에서 찍은 북한작가 김용남의 사진이다. (남북공동사진전시회는 결실을 맺은 최초의 남북공동사업으로 내가 이사장으로 있던 사단법인 ‘미래사회정보생활’에서 주최한 행사이다.)

또 하나는 아리랑 위성이 찍은 것으로 하늘에서 본 천지의 사진이다. 원내대표가 된 후에는 회관에 갈 기회가 적어졌지만 종종 들를 때마다 백두산과 천지의 장엄한 자태를 보면 기운과 활력이 솟구친다.

의원회관에 들렀던 어느 날 신상진 원내부대표가 내 방을 방문했다.

신 의원은 천지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천지 위성사진을 가리키면서 넌지시 말했다. 천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어떤 동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통찰력이 좋은 신 의원은 금방 반응했다. “천지가 곰 모습 아닙니까!” 탄성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렇다. 천지가 곰이다’. 정확히는 곰 머리 모습이다. 곰 머리 모양을 한 천지가 금방이라도 하늘로 향해 솟구쳐 올라오는 모습을 느낀다면 어찌 전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으리오.

곰 머리 모습은 위성사진으로 볼 때 확연하게 드러난다. 천지의 전체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실 천지의 전체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기란 쉽지 않다.) 연해주 방향으로 입을 크게 벌리며, 압록강과 요동 방면으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은 광활한 대륙을 호령하는 한민족의 기개와 기상 그 자체이다. 한반도를 향해 신비스러운 기를 강력하게 뿜어내는 느낌이다.


백두대간의 기점이자 광활한 만주벌판으로 뻗어나가는 겨레의 성지인 백두산. 백두산은 한민족의 발상지이자 성지(聖地)이다. 천상에서 환웅이 내려온 지상세계가 백두산이요, 곰이 인간으로 환생한 곳도 백두산이요,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곳도 백두산이다. 백두산에는 민족의 혼과 얼이 담겨있다.

백두산 꼭대기 16개 봉우리로 감싸여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천지.

천지에는 천지창조의 신비함이 숨겨져 있다.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하늘의 못(天池)은 두만강과 압록강, 중국 송화강의 원류가 된다. 천지는 한반도 가장 높은 곳에서 반만년 동안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중국 쪽으로 해서 백두산과 천지에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 못난 후예들을 천지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역사의 문으로 안내한다. 곰이 형상화된 천지. 그 천지에 오르면 ‘곰 아이’ 단군의 이야기는 신화나 설화의 차원이 아니라 진한 핏줄로서 우리를 맞이하기 때문이리라.

지난 1월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선수들이 시상식 단상에 올라 ‘백두산 세레머니’ 하는 것을 TV에서 본 적 있다. 중국 측의 과민반응으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뻔 했지만 “백두산은 우리 땅!” 피켓을 든 어린 선수들의 당찬 애국심과 조국애의 표출에 우리 국민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이자 민족혼이 숨 쉬고 있는 백두산은 중국의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더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동계아시안게임의 성화를 백두산에서 점화하는 등 노골적으로 백두산이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잃어버린 조국을 떠나 우리민족의 뿌리와 우리역사의 편린을 찾아다녔던 단재 신채호 선생. 우리민족의 역사를 만나기 위해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백두산이었다.

단재는 백두산에 오르면서 흙 한 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지어 스치는 바람 한 점에서도 우리역사의 숨소리, 백두산이 뿜어내는 민족혼과 정기를 느꼈을 것이다. 그에게 백두산은 역사이자 민족이고 신성한 성역이었다.

가깝고도 먼 곳인 백두산 천지를 보고 있노라면 휴전선 장막을 걷어내고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백두산을 단걸음에 올라 민족의 어머니로 승화된 ‘곰 머리 천지’를 내 생에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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