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과서
송재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시민일보
| 2007-04-04 19:59:02
교육부가 지난 3월9일 디지털 교과서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사전, 공책 등의 기능을 통합한 단말기로 기존의 종이책 교과서를 대체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1년까지 5년 동안 660억원을 투입하여 2013년부터는 전국 초·중·고교에 전면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모든 종이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고 공책도 필요 없으며 연필이나 볼펜 등의 필기도구도 무용지물이 된다.
교육부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한 직접적인 계기는 “지식의 생명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상황에서는 교육과정을 수시로 개정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 교과서 형태로는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창의적인 개별학습, 교육격차 해소, 사교육 의존도 완화, 전자책 관련 산업 활성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기대하는 효과는 장밋빛 환상일 뿐이요 허황한 백일몽(白日夢)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40여 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나의 경험으로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학생은 교과서와 공책과 필기도구를 준비하고 선생은 교단에서 백묵으로 흑판에 판서(板書)를 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수업의 정도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필기하는 데에 따라서, 학생들이 던지는 질문에 따라서 수업의 내용이 달라진다. 아니 학생들의 앉은 자세나 눈빛에 따라서도 강의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교육은 살아있는 인격체와 인격체가 부딪치면서 이루어진다.
2000년이 시작될 무렵, 세계의 석학들은 인류 최상의 발명품으로 종이를 꼽았다. 지식의 전달 수단으로 종이책을 능가하는 것이 아직은 없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신하리라는 예측도 빗나가고 있다. 종이가 발명된 이래 인간은 종이책을 보면서 지식을 전달받았고 사고력을 증진시켰다. 지금 우리 사회는 ‘디지털 중후군’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 디지털은 그것대로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만이라도 인간의 냄새가 나는 아날로그식 교육을 시키는 것이 어떨는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왜 어린 학생들을 디지털의 수렁으로 몰아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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