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프로 정신이 바로 성공의 지름길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시민일보
| 2007-04-08 19:06:45
대학 영어 특강을 할 때 나는 한 가지, 프로정신에 충실했다. 프로정신이란 완벽함이 기본이다.
여러 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세칭 일류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해왔기 때문에 강의 내용을 줄줄 외울 정도가 되었을 때도 수업 시작 30분 전부터는 오직 강의만 준비했다. 내가 영어강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철저한 프로정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휴강은 한 번도 없었다.
뉴욕주립대 2학년 겨울방학 때 고려대 특강을 맡은 적이 있다. 나는 꽤 건강한 체질인데도 국내 스케줄을 무리하게 강행하기에는 유학 생활로 인한 심신의 피로가 컸던지 며칠째 계속된 혹한을 이기지 못해 그만 심한 감기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오한과 두통까지 겹쳐 견디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주위 사람들은 안쓰러우니 하루 휴강하라고 권했지만, 나에게 영어를 배우려고 추위를 무릅쓰고 학교에 나올 학생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추슬러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겹겹이 껴입고 고려대로 향했다. 예상대로 강의실은 학생들로 빽빽했다. 학생들을 보는 순간 어쨌든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가 안 돼 굶었더니 현기증까지 났지만 학생들의 열기에 힘을 얻어가며 무사히 강의를 마쳤다. 강의가 끝났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자리에 뻗어 그 이튿날까지 잠에 곯아떨어졌던 것 같다.
영어는 내 삶에서 아주 독특한 몫을 해낸 수단이었다. 그 수단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고, 국제적 안목을 갖춘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요즘은 어려서부터 영어를 접하는 것이 사회 분위기다. 그렇다면 영어에 젖어들 환경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영어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어야 한다. 잠시 우리가 어떻게 우리말을 처음 배웠는지 생각해보면 영어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답이 나올 것이다. 우리말 환경에 노출된 어린아이는 특별히 말 배우는 비법을 몰라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혼자 말을 배워 한다. 영어도 그렇다. 영어 환경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반복하면 자연스레 터득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말과는 언어 구조와 어순부터가 다른 영어의 대가가 되는 비법도 있을 수 없다.
영어를 더 이상 정복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내가 영어 속으로 들어가서 살아온 그 세월 속에는 영어가 삶의 수단이 된 과정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러나 단지 영어 강사, 영어 저술가로만 남지 않고 더 큰 바다로 나아가고 싶은 열망이 다시금 스멀스멀 내 살갗에 퍼져 파고들었다. 대학영어 베스트셀러 저자의 반열에 드는 영광을 얻었고, 영어교재의 국산화, 대중화 바람을 일으킨 자부심도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의 자리, 덩그러니 비어 있는 그 허전함을 메울 길이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의 저림의 정체는 바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하는 불안감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대학 영어 강사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려보았고 또 책도 펴내 베스트셀러가 됐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그리고 무얼 해야 하나? 절망이 태산처럼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는 승리의 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한데 방향을 잡지 못해 길을 잃고 헤매는 두려움, 그런 막막함이 앞을 막아섰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치고 올라오던 그날 이후 크게 볼 줄 아는 대관(大觀)의 자세를 키우는 정치학을 공부했으니 이제 그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세밀한 소찰(小察)의 태도를 익히고 싶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로스쿨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다시 정상에서 내려와 또 다른 정상을 향하려는 준비로 내 마음은 뜨겁게 달구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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