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바라본 박정희
박호성(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장)
시민일보
| 2007-04-09 20:32:45
나의 초등학교 6학년은 박정희 장군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나는 국민학교의 수학여행 풍습이 일제의 잔재인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한다. 어쨌든 그 무렵의 수학여행이란 6.25의 폐허더미에서 베풀어지던, 국민학교 6년을 마감하는 하나의 화려한 세레모니였다.
그러나 우리는 불운했다. 으스스한 선글라스를 낀 박정희 장군은 5월로 잡혀 있던 이 꿈속의 수학여행을 우리에게서 빼앗아버렸던 것이다. 그는 애초부터 나에게 ‘박탈’로 다가왔다. 박정희는 어린 나에게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다.
한마디로 박정희 시대는 개발독재를 국가안보로 정당화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개발을 빙자한 독재야말로 ‘안보 위기론’에 의해 합리화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의 그 자체였던 것이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justifiable) 있다. 그러나 결코 정당한(legitimate) 것이 되지는 못 한다”고 설파한다. 독재 역시 정당화될 수는 있지만 결코 정당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안보 위기론’은 곧 독재의 정당화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이러한 독재와 안보가 빚어내는 코미디 앙상블을 관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환갑잔치를 서울 한복판에서 치러야 할지 모른다고 법석을 피우는 조작된 광기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책을 읽건, 말을 하건, 사람을 만나건, 심지어는 머릿속에서 공상을 하건 간에, 조금이라도 정권에 기스를 내는 일이라면 이내 김일성과 연계되었다. 우리는 소곤거려야 했고, 눈치를 살펴야 했고, 포승줄에 묶여 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불편한 양심을 달래야 했고, 쓰디쓴 소주로 우리의 비굴과 우리의 만용과 우리의 방황과 우리의 치기를 위로해야 했다. 그러나 정권은 보다 강인했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한 잘못도 있지만 예컨대 전 독일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뚫은 공로도 있음을 ‘공평히’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를 잘못한 일도 있지만 잘한 일도 많은 정치가로 대접하는 것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를 무조건적으로 독재자요, 반인륜적 파시스트로 단죄하는 것이 보다 합당한 역사적 판단일까? 나는 두 번째의 평가가 정당하다고 믿는다.
박정희 시대도 대체로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프랑스의 위대한 정치사상가인 토크빌은 절대군주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자의 육체에 고통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지만, 민주주의 시대는 소수의 영혼에 고통을 가함으로써 다수의 의지를 관철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정희씨는 육체와 정신을 가리지 않고 위해를 가함으로써 자신의 개인적 의지를 무조건적으로 관철시켰다. 그는 민주주의 시대의 절대군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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