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향한 힘든 여정 속으로 (2)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시민일보
| 2007-04-10 16:40:55
판례를 곧바로 수업에 활용하는 로스쿨의 수업 방식은 당시 이론 위주의 독일식 법률 교육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학생들은 새로운 교수법을 통해 어려운 법률 지식을 쉽게 체득할 수 있고 졸업 후 바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로스쿨의 수업은 법원 판례를 철저히 읽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업 중에 한 학생이 판례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른 학생이 판례의 법률 조항과 법칙을 설명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교수의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진다.
훈련에서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로스쿨 첫 형법 시간에 처음으로 질문을 받았다. 교수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자, 강의실 안의 눈길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교수가 천천히 질문을 반복했다. 어젯밤 분명히 몇 시간에 걸쳐 준비한 내용인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점수를 매겨도 C밖에 안 되는 수준에서 겨우 대답을 하고 앉았다. 살면서 그런 긴장을 얼마나 겪을지 모르지만 한바탕 가슴으로 파도가 몰아치고 갔다.
로스쿨 1년차 학생들은 이런 수업 진행 방식에서만 기가 죽는 게 아니라 성적으로도 완전히 제압당하고 만다. 로스쿨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보통 미국 4년제 대학에서도 아주 우수했던 사람들이다. 시라큐스 로스쿨에도 학부 때 전체 수석을 한 친구가 꽤 많았다. 콧대 높은 줄 모르고 날뛰던 많은 학생이 로스쿨 1년차 때 첫 성적을 받아보고는 모두 어깨에 힘을 빼고 만다. 1년차 250명 학생 중에서 절반인 125명의 평점이 C+이다. 일등도 평점 A를 못 받고 평점 B+인 3.5를 받는다.
그때까지 A만 받아온 우수한 학생들이 B나 C로 도배된 성적표를 참지 못해 더러는 학교를 그만두기도 한다. 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가 첫 학기 성적표를 받아보고는 ‘이렇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공부를 계속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며 학교를 떠난 경우도 있다. 우리 반 한 여학생도 학부에서 전체 수석을 했는데, 형법 중간고사에서 B를 받더니 첫 학기 성적이 나오기도 전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공부에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던 학생들이 로스쿨의 첫 학기 성적을 받고는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무지와 무능함이 드러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 학생들은 미련 없이 떠난다. 미국 로스쿨 1년 동안 철저하게 자신이 뭉개지는데, 자신의 약점과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는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없음을 깨우쳐주는 과정이라고 본다. 패배해본 사람만이 싸움에 이길 수 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는 늘 있게 마련이다. 자신이 최고인 줄만 알고 살아온 사람이라도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진정한 강자는 자신과 상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학생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미국의 로스쿨은 변호사 양성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학부 전공인 다양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론을 병행한 실무 위주의 독특한 법학 수업을 진행하는 미국의 로스쿨은 변호사 양성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미국 로스쿨에는 변호사 시험에 대비하는 과정은 없다. 대신 변호사 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은 두 달 정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시험에 합격한다. 로스쿨은 우리처럼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변호사가 되는 데 갖추어야 할 것들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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