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향한 힘든 여정 속으로 (3)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시민일보
| 2007-04-11 20:15:05
오늘날 미국이 누리는 경제 호황과 최강의 국가 경쟁력의 저변에는 좀더 나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는 수십만 변호사의 지대한 역할이 있다.
미국 변호사들의 활약은 법률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변호사가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으로 진출한다. 역대 대통령 41명 중 24명이, 상·하원의원의 60퍼센트 이상이, 연방정부 고위 관료 대다수가, 미국 500대 기업 CEO의 25퍼센트인 125명이 모두 변호사 출신이다.
로스쿨에서 단련된 법적 마인드는 법조계는 물론 정계, 관계, 재계 등 각 분야에서 ‘법에 의한 지배’ 즉, 법치를 확신한다.
한국에서도 법조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 일이 있다. 법률 소비자인 국민이 적정한 가격으로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윤리적으로 무장된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아울러 고시병 해소와 법조 인력 양산을 위해 사시 합격자 증원, 법학 전문대학원 신설 등 사법 개혁이 하루바삐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로스쿨 1년차 때 치열한 경쟁에서 적자생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정말로 나의 무능과 초라함에 많이 절망했다. 중학교를 마칠 때도, 뉴욕주립대를 졸업할 때도 일등이었고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쳐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로스쿨에서는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그나마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과정을 1년을 겪고 나니 생소하고 어렵기만 하던 법학 공부에 새로운 매력과 흥미를 느꼈다. 공부가 잘 안 될 때, B와 C를 받아 자존심이 몹시 상했을 때 법학은 내 적성이 아니라고 도망쳤더라면 그런 재미와 보람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로스쿨 2년차 과정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협상법(ADR)을 공부하기 위해 이 분야의 교수진이 좋기로 유명한 마아퀘트대(Marquette)로 옮겼다.
밀워키에 위치한 마아퀘트대는 가톨릭 예수회 계통의 대학으로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위스콘신 최고의 사학이며 미국 중서부 지역의 5대 명문 사학의 하나지만, 미국 중서부 명문 대학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이 대학도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대학이 있는 지역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밀러 맥주의 본고장이기도 한 밀워키는 독일계 미국인이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속의 독일로 지칭되는 곳으로, 독일인 특유의 소박함과 품위가 있다.
그리고 위스콘신 주는 밀워키 같은 대도시를 빼면 주 전체가 낙농지역이어서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지역 정서가 안정된 덕인지 주민들은 부드럽고 온화했다. 뉴욕에서는 오로지 공부만 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밀워키에 와서는 주변의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밀워키에 와서도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공부하는 규칙적인 생활이 계속됐지만, 예전처럼 나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지만 졸업 학기에는 로스쿨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는 평점 A-를 받았다. 그리고 기분 좋게도 협상법에서 일등을 하여 칼리(CALI) 법학연구소에서 주는 상인 Excellence for the Future Award를 받았다.
수업은 혹독했고 훈련은 더더욱 어려웠지만 끝맺음을 잘 해내 사실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이렇게 수업이 자신과의 싸움을 거치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탐구는 정치학을 통해서, 이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이고 정밀한 탐구는 이렇게 법학을 공부하면서 이어갈 수 있었다.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대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완벽하게 갖추는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안목을 닦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힘은 여기에서 얻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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