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에서 (1)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4-12 20:24:39

변호사 겸 어머니이었던 시절에도 대처는 정치가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 목적은 어디까지나 정치와 관련된 것이고 변호사도 그러기 위한 수단이었다. 변호사의 정치적 단체인 ‘보수변호사협회’에 가입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위원의 한 명이 되어버린 것도 정치활동에 대한 그녀의 열의 때문이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의원이 될 때까지의 5년간 그녀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테스트에 계속 집요하게 도전했다. 영국인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종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예컨대 보수당원이 입후보하고자 하는 경우, 먼저 선거구의 보수당 지부에 입후보 신청을 낸다. 보통 지부는 입후보자 전형위원회를 발족하고 그 위원회가 신청을 접수한다. 신청서에 자신의 경력, 정치 활동, 정치적 신념, 나아가서는 자신이 의원이 될 경우의 포부 등을 기재한다. 전형위원회는 많은 신청자 중에서 서류 전형에 의해 몇 명 또는 열 몇 명을 골라내고 그들을 초청하여 연설을 시키고 질문을 쏘아댄다.

보수당의 정책을 선거구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가로서의 인품을 어떻게 인상적으로 새기게 할 것인가? 등의 의원 자질을 심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형위원회의 투표에 의해 그 선거구의 보수당 입후보자가 결정된다. 따라서 정치가의 2세가 아니더라도 부자가 아니어도, 그리고 그 현지에 오래 살지 않은 사람이라도 입후보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부패 선거가 횡행하던 끝에 만들어진 민주적 후보자 선출이며, 영국 국민의 정치적 지혜이기도 했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젊은 여성으로 게다가 두 아이를 가진 대처는 의원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영국에는 아직까지도 견고한 계급제도의 장벽이 있다. 영국은 계급제도의 장벽을 뚫어가면서 한편으로는 계급제도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치제도에 능력주의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능력 있는 자가 사회 지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계급제도에 대한 불만을 상당한 정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처는 이 능력주의의 사회 시스템을 십 이분 이용했다.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오핑턴(Orpington), 베켄햄(Beckenham), 애쉬포드(Ashford), 메이드스톤(Maidstone), 헤멜 헴프스테드(Hemel Hempstead), 옥스퍼드의 각 선거구에 입후보 신청서를 제출했다. 게다가 그 동안 선거나 보수당 지부대회 등의 보수당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요청을 받으면 모든 것에 우선하여 보수당을 위해 연설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 활동가의 연설은 그 나름대로 청중이 모이는 효과가 있었으므로, 보수당 쪽도 그녀를 크게 이용했다. 그녀의 보수당에 헌신하는 모습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입후보자로 신청할 때마다 탈락되고 말았다.

어린 쌍둥이를 가진 주부에 대해 편견 때문이었다.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불리한 판에, 게다가 돌봐야 할 유아들이 있다는 것은 더 한층 장애가 되었다. 그 불리한 입장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여 1년이 지난 무렵이다.

“선거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정치의 세계는 한 치 앞을 모른다” 등의 말은 정치의 불가지성(不可知性)에 대해 날카롭게 정곡을 찌르고 있다. “내일을 모른다”는 점에서 도박과 다름이 없다. 정치가의 승부 운이 강한 점이 이야기되는 것도 정치에 도박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