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협상전문가로 국제변호사가 되다 (1)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시민일보
| 2007-04-12 20:25:29
밀워키 지방법원에서 판사시보로서 조정위원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다양한 경험을 쌓을 만큼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미국 사회의 이면과 서민층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 나름의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내가 맡은 사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분야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벌어진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사건들을 조정하면서 우리네 문화와는 거리가 먼, 철저히 계산적인 그네들의 사고방식에 놀라곤 했다.
우리 같으면 치사하게 구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게 속 편하겠다고 생각될 만큼 적은 돈을 놓고도 시비가 생기면 법정을 찾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적 사고에 젖어 있던 나는 그들의 합리주의와 정확성에 쉽사리 적응이 안 돼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맡은 첫 사건은 카펫 보상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일어난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카펫을 험하게 사용한 세입자에게 보상을 요구했고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카펫 수리비용을 전액 보상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결국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다가 이 문제를 법정까지 들고 온 것이다. 나는 양쪽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개별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선 집주인에게 물었다.
“카펫을 구입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7년 됐습니다.”
“세입자는 당신 집에서 얼마나 살았습니까?”
“1년요.”
“카펫을 처음 구입할 때 가격은 얼마였고, 수리비용으로 세입자에게 요구한 액수는 얼마입니까?”
“500달러 주고 샀습니다. 카펫이 워낙 많이 손상돼서 수리하려면 아마 200달러는 족히 들 겁니다.”
이번에는 피고인 세입자에게 물어보았다.
“많이 낡아 있었어요.”
“그 뒤 카펫에 손상을 준 적은 없나요?”
“물건을 옮기다가 카펫이 약간 상하긴 했지만 워낙 낡아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망가진 겁니다.”
나는 두 사람 의견을 모두 듣고 이들에게 협상의 카드를 내놓아야 했다.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진다면 그건 협상이 될 수 없다. 양쪽의 손해를 최대한 줄이고 쌍방이 만족할 만한 윈윈(win-win) 전략을 써야 했다.
세입자가 카펫을 망가뜨린 것은 사실이지만 7년 전에 구입한 가격의 반 가까이를 보상하라는 집주인의 주장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에게 조정자인 내 앞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펴보라고 한 뒤 이런 판결을 내렸다.
“남의 물건을 손상시켰으니 보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미 낡은 카펫의 수리비용을 전액 보상하라는 것은 지나칩니다. 카펫이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것이라면 세입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큰 것이 마땅하겠지만, 이 카펫은 이미 7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니 보상비용 200달러를 두 사람이 절반씩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모두 조정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사건은 해결이 났다.
분쟁에 휘말린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공공기관에서 제3자의 공정한 조정과 중재를 통해 협상을 하게 된다. 비록 많지 않은 액수지만 정확한 계산을 끝낸 다음에는 서로 다투던 사람들도 웃으며 악수를 하고 화해를 한다.
협상의 목적은 쌍방이 만족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 두 사람이 오렌지 하나를 가지고 다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서로 자기가 다 차지하려고 옥신각신하다가도 결국 오렌지를 반으로 잘라 반쪽씩 나누어 갖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즉 원하는 것의 반을 갖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여기서 좀더 공평하자고 들면 한 사람이 오렌지를 자르고 나머지 사람이 먼저 선택을 하게 해도 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놓고, 우선 각자 오렌지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게 한다. 그런데 그 이유를 들어보면 의외로 한 사람은 주스를 만들 알맹이가 필요하고, 한 사람은 케이크 재료로 껍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오렌지를 무조건 절반씩 나누어 갖기보다는 각자 자기가 필요한 부분을 갖는 것이 어느 쪽도 손해 보는 일 없이 두 사람 모두 원하는 것을 온전히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협상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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