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생존전략

공 성 진(한나라당 의원)

시민일보

| 2007-04-22 19:37:40

{ILINK:1} 지난 2.13 합의에서 북한이 약속한 영변 초기조치 이행 시한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측이 제시한 BDA 문제 해결안에 대해 북한이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향후 합의 이행과정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를 이해하려면 북한이 핵 카드를 들고 나온 이유를 북한의 생존전략 차원, 소위 내재적 접근법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국제질서는 급격한 변화에 휩싸였습니다. 1991년 말 소련이 붕괴하며 시장경제는 범세계적으로 팽창하게 되었고, 이에 편승한 중국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며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였으나, 소련 붕괴의 여파로 북한은 고립되어 빈곤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자 핵무장을 생존전략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중 한반도 균형구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소련의 붕괴였습니다. 붕괴 직전 소련이 북한의 대외교역 중 차지하는 비율은 50%를 상회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소련의 멸망으로 거의 무시할 수준으로 낮아졌으므로 수치상으로도 북한 대외경제관계의 약 50% 정도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입니다. 결국 북한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를 맞게 되는데, 문제는 이 어둠의 그림자를 없애는 데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은 오히려 소련 붕괴 다음해인 1992년 북한의 동의 없이 한국과 전격적으로 수교를 단행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체제 보존이라는 긴박한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해결책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후견국인 소련이 해체되었으므로 그들의 안보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고, 동시에 소련을 대신해 북한의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지목한 대상은 미국이었습니다. 바로 핵무기의 개발이 이 모든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북한 문제, 즉 경제적 빈곤과 핵 위협은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아닌 공산권 내부, 즉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연유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현재 처해 있는 심각한 경제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등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절박감에서 과거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판’을 바꾸어보자는 시도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중국 관계와는 역비례를 이루며 한국이 중국에 상당히 기우는 현상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더욱 가시화되었습니다. 한국이 일본과는 지속적인 마찰구도를 그리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가 지속되었고, 이는 한반도 남쪽 삼각 연대구도의 일각이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 간에 벌어진 잦은 정책상의 마찰은 과거에는 볼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대응하여야 했고, 그 단초는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동시에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전략구도 변화라는 새로운 환경 하에 단행된 것이 미국의 북미관계 정상화 제의와 한미 FTA였던 것입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과는 한미 FTA 체결을 통해, 북한과는 정치적 화해를 통해 동북아의 중심축이 중국쪽으로 기우는 것을 방지하면서 북한이 핵문제를 극복하고 미국과의 파트너쉽을 강화하며 개혁개방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북한을 사실상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수용하려 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핵이라는 카드로 일시에 많은 것을 얻어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희망해온 미국과의 양자접촉과 관계개선을 얻어내고 있고, 미 재무부가 완강히 버틴 BDA의 동결자금을 해제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북한이 핵 하나로 이렇게 벌어들인 성과는 선례로 남을 수밖에 없고, 김정일은 이 카드를 계속 사용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힘들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은 핵을 이용한 미국과의 줄다리기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시도를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북한의 생존전략에 대해 신중하고 냉정하게 대처하되 북한의 기만과 국제사회의 달래기 반복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과거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앞으로도 이러한 고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므로 북한의 단계별 약속 이행 여부에 따른 신축적인 대응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은 북한에 대한 정책이나 노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지원은 지원할 때가 되면 하는 것이고 상황 개선에 연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긍정적인 조치를 하면 그에 비례해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되 동시에 핵폐기를 향한 국제사회의 동참의지를 확보하는 노력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자세는 지양해야 하며 만약 실제 북핵문제 해결을 향한 진전이 기대에 못 미침에도 성과를 과장하려 한다면 이는 결국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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