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에서 (12)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4-29 19:19:48
EEC의 리더 격인 프랑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영국 국민의 자존심은 엄청나게 상처를 입었다. 영국이 유럽을 위해 EEC에 가입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배척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영국 국민의 타격과 분노는 맥밀런에게 향해 “그가 정책 선택을 잘못했다”는 비난이 일어났다.
불운은 겹치는 것일까? 다음해 봄부터 여름에 걸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스캔들이 밝혀졌다. 존 프로퓨모(John Profumo) 국방장관이 소련 대사관원과 애인 관계였던 매춘부 크리스틴 킬러와 정사를 즐겼다는 것이 보도되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의 지배층은 부부관계 이외의 남녀관계에 비교적 관대했다. 기혼인 귀족간의 연애관계는 다반사였으며, 각료가 연애문제를 일으켜도 그다지 놀랄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문제는 국방장관이라는 군사 기밀을 취급하는 책임자가 소련의 스파이로 지목된 사내와 관계가 있는 여자를 애인으로 삼았다는 점이었다.
킬러 양이 젊고 한 눈으로 보아도 이지적으로도 보이는 단정한 용모였다는 것도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 정도로 빼어난 미인이 왜 매춘부가 되었단 말인가?
프로퓨모 국방장관이 의회에서 “나는 결백하다”며 킬러 양과의 관계를 부인하였을 때, 국방장관뿐만 아니라 맥밀런 수상의 운명도 결정적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국방장관의 의회 연설을 사실이라고 믿은 맥밀런은 국방장관 측에 서서 그를 옹호했다. 그의 편을 들어서 정권에 대한 공격을 피하고 ‘맥밀런의 건재’를 국민에게 보여주려고 했으나 매스컴의 추궁은 매섭기만 했다.
이 ‘의회의 적’을 철저하게 옹호한 맥밀런도 피해를 입었다. 야당으로부터가 아니라 여당 보수당 의원으로부터도 사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제 불황 때문에 슈퍼 맥에서 단순한 맥으로 전락한 맥밀런에 대해, 경제 뿐만 아니라 프로퓨모 사건의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미 보궐선거에서 보수당은 대패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총선거에서도 패배하겠다는 위기감이 보수당 의원 속에 어떤 종류의 패닉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보수당 내부에서의 사임 요구는 일반 의원이 앞으로의 선거결과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10월의 블랙풀(Blackpool) 보수당 대회에서 맥밀런 사임 요구 결의가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맥밀런은 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보수당으로나 맥밀런에게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맥밀런은 병을 구실로 사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계 수상 선출은 결코 원만하게는 되지 않았다. 후보자로 버틀러(Butler) 내무장관, 모들린(Magdalen) 재무장관, 헤일샴(Hailsham) 추밀원 의장이 입후보했다. 외무장관이었던 더글러스 흄 백작도 대의원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흄의 경우 백작으로 귀족원 의원이라는 결점이었다. 영국의 수상은 하원의원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