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에서 (14)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5-01 19:54:07

흄은 공개 선거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제안에 동의하고, “당수 선거는 하원의원 전원의 투표로 실시되고 1차 투표에서 다른 후보를 15% 이상 따돌리고 과반수에 달한 자가 된다. 이 조건을 만족한 자가 없는 경우에는 2차 투표를 한다”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 새로운 방식이 받아들여졌고 흄은 깨끗이 사임 요구를 받아들이고 당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에 의해 보수당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 의원에 의한 공개 당수 선출이 시작되게 되었다.

이것은 보수당으로서 획기적인 일이었는데, 대처의 정치 생명에서도 혁명적인 것이 되었다. 식품 잡화상의 딸이라는 보수당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의원이 당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매직 서클’이 건재했다면 보수당에 여성 리더가 탄생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흄 선출에 얽힌 분규가 나중에 대처 수상 탄생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는 뜻밖에 장면에서 그녀에게 미소를 보냈다.

65년 7월의 보수당 당수 선거에는 에드워드 히스 전 노동장관, 레지널드 모들링(Reginald Maudling) 전 내무장관, 에녹 파웰(Enoch Powell) 전 후생장관 등 3명이 입후보했다.

첫 번째 투표에서 히스가 과반수에 달해 톱이었으나 2위와의 차이가 15%에 달하지 않아 두 번째 투표를 하기로 되었다. 그러나 다른 두 후보가 히스 당선으로 보아 입후보를 사퇴했기 때문에 새롭게 히스 당수가 탄생했다.

대처는 당초 모들링을 지지할 작정이었다. 그녀는 내무장관 시절의 그의 능력 식견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투표 직전에 히스 지지로 돌아섰다. 정치에 능수능란한 윌슨을 상대하려면 히스와 같은 공격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히스가 가진 공격성이 대처의 체질과 닮은 것도 히스를 지지한 이유이다.


영국 의회에 필요한 능력으로 종종 공격성이 꼽힌다. 의회 토론에서 적대하는 상대방을 얼마나 공격할 수 있는가로 정치가로서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다. 의회야말로 정치적 능력을 발휘하는 최대의 링인 이상 여기서의 싸움에 이겨야 한다. 최고의 공격은 상대방을 철저하게 때려 부수면서도 약간의 퇴로를 남겨두는 것이다. 대처는 그 천재였다. 히스도 역시 그런 공격 테크닉을 익히고 있었다. 대처의 경우 그들을 능가하는 예리함이 있었으나 결코 상대방에게 달아날 길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상대를 완전히 때려 눕혀서 반론의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이것이 나중에 ‘공격에서 가장 우수한 정치가’라는 말을 듣는 소이이다.

대처와 히스가 공격성에서 닮은 것은 두 사람의 경력이 닮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히스는 대처와 같은 중산계급 출신이고, 그래머 스쿨이라 부르는 머리가 좋은 아이만을 모은 공립 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한 것도 같다.

게다가 옥스퍼드에서는 시기는 다르지만 대처와 마찬가지로 ‘옥스퍼드 학생보수협회’의 회장 포스트를 경험했다. 대처가 사회의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공격성을 기른 것과 같은 이유를 히스에게서 찾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히스는 그 능력을 높이 평가 받으면서 친구가 적은 고고한 사람이었다. 대처도 친지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마음을 열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는 북아일랜드 장관이 된 에어리 니브 정도였다. 니브를 IRA(아일랜드 공화군)의 테러로 잃고 나서 그녀는 스스로의 판단 말고는 의지할 인물을 알지 못했다. 히스나 대처나 친한 친구를 만들지 않고 권력의 정점에 올라간 것은 그들이 자기 능력에만 의지해왔기 때문이다. 주위사람들도 역시 인간관계보다 정치적 능력이야말로 정치 지도자의 조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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