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에서 (21)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5-10 19:11:57

앞으로만 가는 대처에게도 하나의 걱정이 있었다. 쌍둥이 아이들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일에 열중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녀로서는 가정은 지켜야 할 성채였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동안 내내 그녀는 아이들에게 눈을 반짝였다. 아이의 친구가 놀러 오면 반드시 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식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디저트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영양 있는 걸 먹고 있는지 여부도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있었다. 딸 캐롤이 친구 집에 불려가서 기분 좋게 돌아온 적이 있었다. 무얼 먹고 왔는지 물어본 대처는 갑자기 안색이 달라졌다. 캐비지와 감자 버터볶음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물었다.

“더 이상 그 집에는 가지 마. 너한테 먹다 남은 거나 먹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거든.”

이 정도로 간섭하는 모친 아래서 자라면 아이들은 저절로 제멋대로 굴게 된다. 대처 가의 아이들도 제멋대로 자랐으나 성격은 대조적이었다. 캐롤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독립심이 왕성했으나 마크는 응석꾸러기였다. 캐롤은 성격이 강했으나 마크는 아버지 데니스처럼 연약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했다. 옥스퍼드 시절에 어머니는 댄스에 서툴렀다. 상대 남학생이 “그녀의 댄스는 마치 불도저 같다”고 평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는 두 아이들에게 댄스를 배우게 했다. 여자애에겐 댄스, 남자애에겐 스포츠라는 식으로 구분하지 않은 점이 과연 대처답다. 남자애나 여자애나 똑같이 해도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대처 일가가 런던 교외의 판버러(Farnbo rough)에 살고 있었을 때, 두 아이들에게 승마를 배우게 한 적이 있다. 하층계급에서 중산계급으로, 다시 상류계급으로 계속 올라간 대처는 아이들에게 상류계급에 입문할 수 있는 스포츠로 승마를 배우게 한 것이다.

아이들의 예절 교육에도 그녀다운 점을 보여주었다. 두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 두 아이의 장난감 종류를 전부 내버렸다. 이제 이 나이의 아이들이 가질 장난감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릴 적에 장난감이 없었다. 양친에게 장난감을 사줄 만큼의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나, 설령 여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엄격한 할머니 아래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체험에서 장난감이 필요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일단 장난감을 주었다. 그러나 조금 자라자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걸 빼앗아버렸다.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만을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교육 마마’(자식 교육에 열성적인 어머니)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사립학교에는 저학년부터 기숙사제도가 있다. 마크는 8세부터, 캐롤은 10세부터 부모 곁을 떠나 주일은 기숙사에서 보냈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독립심을 길러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캐롤의 경우가 그랬다.

캐롤은 그 성격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간섭을 싫어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관철하려고 했다. 12세 때 이미 “크면 가능한 한 빨리 집에서 나갈래” 하고 공언했다. 친구에 대해서도 어머니가 고명한 국회의원인 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독립심이 너무 강해 학교 교사들은 싫어했으나 동료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다.

마크는 캐롤과는 대조적이었다. 어머니가 마가렛 대처라고 늘 나발을 불었다. 남에게 사랑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잘난 척했다. 따라서 친구도 만들 수 없었다. 마크는 아버지의 연약함과 어머니의 오만함을 아울러 가졌던 것이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