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V와 KTX, 그리고…
국민중심당 류근찬 의원
시민일보
| 2007-05-22 19:59:13
{ILINK:1} 2007년 초에 한 시민단체는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3월7일에는 프랑스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한인 변호사의 광고가 ‘르몽드’지에 실렸다는 소식을 KTX 객실에서 접했다.
필자의 지역구가 충청도 서해안의 끝자락에 있는 보령, 서천 이다보니 각종 세미나와 정치행사 때문에 보령·서천에서 서울과 대전을 주로 오가는 편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는 프랑스 기술을 도입하여 만든 고속철도를 이용하면서 아직까지 묘한 감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로부터 고속전철 기술을 도입할 때 미테랑 대통령이 바로 140여 년 전에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구두로 약속했고, 또 2006년 6월5일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거쳐 자크 시락 프랑스대통령 앞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고속전철을 약속했던 사람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한국에 고속전철 건설을 발표하면서 선진국의 고속철도 기술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프랑스, 일본, 독일 등 3개국의 기술을 놓고 저울질했다.
그리고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의 고속전철 기술 도입대상국으로 독일이 아닌 프랑스를 선택했고 프랑스로부터는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약속받았다.
1993년 당시 독일의 이체(ICE)와 경쟁하던 프랑스는 테제베의 판매 협상시 외규장각 도서들을 영구임대방식으로 반환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그러나 16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
반환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프랑스의 고자세 때문이다. 이제 반환 협상이 벽에 부닥치자 한국정부는 디지털로 촬영하여 영인본을 만든다며 촬영허가를 프랑스측에 요청했다고 한다.
역사의 시간을 돌려서 그 궤적으로 훑어보는 역사를 살려보자. 141년 전인 1866년 프랑스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고, 베트남과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한국에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대원군의 천주교탄압을 구실로 1866년 10월14일 7척의 군함과 160명의 해군을 보내 작약도를 공격하였다. 조선국이 정족산성과 문수산성에서 강력하게 항하자 프랑스군은 강화도로 후퇴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탈취한 채 퇴각했다. 이것이 병인양요다.
병인양요를 경험한 당시 조선의 대외 사상은 신재효의 판소리에 군주도, 부모도 모르는 ‘괘씸한 서양되놈’에서 집약되어 있다.
당시 조선은 임금이 거둥할 때 임시로 머무는 궁궐(행궁) 외규장각의 문화재들이 약탈당한 사실도 모른 채 전쟁의 승리감에 도취했었다.
신재효의 판소리처럼 프랑스인 역시 조선 군인의 기개에 눌려 도생하기 바쁜 서양 되놈이었던 것이다. 문호개방을 거부하는 조선과 팽창정책을 통하여 상업과 교역을 트고자 하는 열강 프랑스의 교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1세기 반이 지난 1993년 한국은 프랑스의 우수한 철도기술력을 다시 도입하며 잃어버린 역사의 한 기록물을 반환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우리의 권력자, 정부 관리들은 무대 전면에서의 마치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약속했으나,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았다.
1세기 이전에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접촉이 문명의 충돌이었다면, 20세기 한-불간의 기술교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간 기술협력이었고, 동등한 국가간의 경제교류로 해석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도 인식변화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141년 전의 사고방식, 즉 서양 우위성의 인식을 바탕으로 오리엔트를 가르치고, 야만의 사고를 가진 유럽의 부속물로서 생각했던 그 모습인 것 같다. 외규장각 문화재를 약탈해 가던 20세기의 그런 사고가 아니라면 그들은 독일로부터 프랑스 화가들의 약탈 문화재를 돌려받는 그 심정으로 동양의 역사를 존중하는 자세를 내보여야만 한다.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우뚝 솟은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프랑스의 영광으로 생각하기에 앞서서 1930년대 캄보디아에서 문화재를 반출해 간 도굴 경력자 앙드레 말로를 문화부장관으로 임명했던 역사의 궤적에 대해서도 부끄러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열강의 각축장에서 은자의 나라였던 조선, 그리고 140년 후에 근대화된 한국은 더욱 더 역사의 시간적 궤적을 냉정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한 개인, 시민단체가 프랑스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고 고군분투하는 눈물어린 자세를 정부가 더 이상 방관할 게 아니다. 과거에는 허위의식으로 상처 난 자존심을 치유했을지 모르나 앞으로 기록될 역사는 그런 궤적을 밟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을 이끌고 있는 대통령, 관료들이 역사의 레일을 깔려면 정의롭고 올곧은 레일을 깔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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