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닝 가 10번지를 목표로 (2)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5-30 20:00:49
근위연대의 일원이기도 했던 화이트로는 대의에 스스로 따르는 것이 영국신사의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새 당수 아래서 당의 통일을 도모하는 것이 당원의 의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전에 스페인 연합함대와 영국 함대가 스페인 남쪽 해안의 트라팔가 앞바다에서 자웅을 결하는 싸움에 들어가기 직전, 영국 함대 사령관인 넬슨 제독은 “영국은 각자가 그 의무를 완수할 것을 기대한다”는 명 문구를 토하고 연합함대를 쳐부쉈다. 보수당이 대처라는 여성 당수를 선출하여 위기에 빠졌다고 보이는 지금, 당수를 보좌하는 것은 넬슨이 말한 ‘의무’라고 화이트로는 생각했던 것이다.
부 당수 취임 시 화이트로는 이렇게 단언했다.
“보수당이 이 나라를 리드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려고 생각할 때, 유일한 방법은 지도자를 통해 스스로를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자기 자신이 설치거나 다른 패들과 계속 논의함으로써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만일 (당의) 힘이나 지위를 얻는다면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 다른 어떤 행동도 어리석은 짓이다.”
이래 화이트로는 88년 초에 건강이 나빠져 은퇴할 때까지 대처의 충실한 보호자 역할을 했다. 대처도 보수당을 지키는 것은 자신이라는 의식이 강했으나, 화이트로는 그녀 이상으로 그 의식을 지속적으로 가졌던 것이다.
대처는 히스파였던 화이트로에게 말을 정중히 하여 맞이했다. 나중에 외무장관이 된 캐링턴(Carrington) 경에 대해서도 그랬다. 히스파도 수용해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에서이다. 대처에게는 이상주의적인 측면이 강했으나, 현실을 보고 태도를 바꾸는 상황주의적인 면도 있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그 특질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대처의 인간관계라면 히스 정권 시절의 스피치 라이터였던 로널드 밀러(Ronald Miller)의 예가 흥미 있다.
대처의 측근들도 스피치 라이터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었다. 당수 선거 일주일 후 히스는 대처에게 그가 당수로 뽑혔을 때 읽을 예정이었던 연설 초고를 보여주었다. 흥미를 느낀 대처가 히스에게 이 초고를 쓴 인물의 이름을 묻자, 로널드 밀러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히스의 스피치 라이터로 일한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대처는 밀러에게 라디오용 5분간의 연설 초고를 쓰도록 의뢰했다. 이 남자의 능력을 시험해보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밀러는 히스를 존경하고 있어, 히스를 패배시킨 대처로 말을 바꾸어 타는 데는 저항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역시 화이트로와 마찬가지 심경이 되어 있었다. 보수당을 위해 힘을 쏟는 것이 신사라는 사명감이다.
약속한 날 밀러는 연설 초고를 가지고 하원의 야당 당수실에 들어갔다. 대처와 밀러는 서로 상대방을 탐색하는 듯한 표정으로 대면했다. 밀러는 연설이 짧기도 해서 이 초고를 대처의 눈앞에서 끝까지 낭독했다. 이 초고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났다.
“강자를 약화시키는 것으로는 약자를 강하게 할 수는 없다. 임금을 지불하는 자를 쓰러뜨리는 것으로는 임금 생활자를 도울 수 없다. 계급 증오를 자극하는 것으로는 동료 의식을 조장할 수 없다. 부자를 때려눕히는 것으로는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없다. 빚에 의해 건전한 안전 보장을 얻을 수는 없다. 버는 이상을 써버려서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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