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주도력이다 (1)

김정기(국제변호사)

시민일보

| 2007-05-30 20:01:42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시간활용에 관한 계획을 심각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협상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협상가로서의 모든 기술을 활용해야만 할 것이다. 특히 협상이 종결로 치달을 때 거래를 마감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양보를 하는 것에 있어 그렇다. 협상 자리에 착석하기 전에 시간에 관한 문제를 신중하게 분석하는 것이 최고이다.

협상가가 아무리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 보여도 그들은 항상 협상 결과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시간상의 압박감 아래 놓여 있다. 상대방의 대표가 숙련된 협상가라면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협상가가 자신의 시간에 관련된 압박감에 관련된 어떠한 표시도 ‘읽어내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사실 그 또한 완료시간에 대한 압박감을 감추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그는 협상을 끝마치는 데 있어 세상의 시간이란 시간은 모두 가진 것처럼 행동할지도 모른다.

협상가들은 왜 이런 속임수에 참여할까? 답은 간단하다. 일을 마쳐야 하는 시간에 대해 주도력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압박감을 조금이라도 드러낼 때 당신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협상력이나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대방은 그만큼 시간의 주도력을 갖기 때문에 유리한 것이다.

외교에서의 한 사례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협상에서 힘의 균형이라는 문제에 있어 얼마나 결정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제 정치에 대한 이야기지만 시간이 협상가의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동일한 원칙이 어떠한 종류의 개인적, 혹은 사업에 있어서의 협상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은 남베트남과 연합하여 북베트남에 대항한 전쟁을 했다. 역사적인 용어로 이 시기는 이른바 냉전의 절정기였다. 두 초강대국인 미국과 (구)소련은 어떤 정치 철학(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인지를 두고 계속적인 대립관계에 있었다.

미국은 ‘도미노 효과’로 알려진 이론을 주창했다. 그 이론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공산주의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지배하게 되면 남베트남마저 공산주의 경제체제로 전환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캄보디아와 같은 여타의 동남 아시아 국가들도 마치 도미노 막대기처럼 차례로 쓰러져 공산주의 국가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 이론이 바로 미국이 남베트남과 동맹하여 전쟁에 개입한 근거였다.


역사가 기록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은 북베트남을 꺾으려는 시도에서 참담하게 실패했다. 베트남에 50만 명이 넘는 군인들을 파견하고, 이들 중 수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 미국은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도 국민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길 수도 없는 게릴라전에 대책없이 말려들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 대통령 린든 B. 존슨과 1969년 대통령이 된 리차드 M. 닉슨은 미국 국민으로부터 전쟁을 끝내라는 압력 아래 놓여 있었다. 닉슨과 그의 조언자들은 이 압력을 예민하게 의식해야하는 처지였다. 한편으로는 일방적으로 베트남에서 철군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패배자’로 보이게 되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닉슨은 자존심 때문에 전쟁이 판단착오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곧장 철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 존슨은 1968년 봄에 파리에서 북베트남과 전쟁 종식에 관해 협상하고자 최초의 평화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양 측은 오직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에만 동의했다. 그 동의 항목은 협상 자리에서 사용할 회의용 탁자의 모양이었다. 그것만을 보더라도 협상이 매우 천천히 진행되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1969년 1월 대통령 당선자 닉슨은 헨리 캐벗롯지를 파리 평화 협상의 대표로 임명했고, 새로운 협상이 1월25일 시작했다. 닉슨은 파리 평화협상의 목표는 ‘영예와 더불어 평화’라고 못 박았다. 닉슨은 미국이 오랜 기간 돈과 인명을 희생했던 그 전쟁에서 무언가를 얻어낸 것처럼 보이면서 전쟁을 끝내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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