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닝 가 10번지를 목표로 (3)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5-31 19:18:18

“사람에게서 자발성과 독립심을 없애버려서는 사람의 특성과 우정을 쌓아갈 수 없다.타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더라도, 그 타인을 항상 도와줄 수는 없다.”

놀라움을 억제하면서 잠자코 듣고 있던 대처는 밀러가 읽기를 끝내자 즉시 일어나서, 발치의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 변색되고 찢어질 듯한 종이조각을 꺼냈다.

“나는 어디에 가든 반드시 이 종이를 가지고 다닙니다”라며 그 종이조각을 밀러에게 내밀었다. 거기에는 방금 밀러가 낭독한 말이 쓰여져 있었다. 그것은 신념으로 일관하여 흉탄에 쓰러진 미국 대통령 링컨의 말이었다.

링컨의 말은 “스스로의 두 발로 서라”는 대처의 철학을 보기 좋게 알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밀러도 역시 그 철학을 신봉하고 있었다. 이래 대처와 밀러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동지적 신뢰관계에 의해 맺어졌다.

보수당 당수의 최대 목표는 보수당을 정권의 자리에 앉히는 것, 즉 대처가 영국의 수상이 되는 것이었다.

수상이 되는 조건의 하나로 대외관계에 강할 것을 꼽을 수 있다. 군사력, 경제력에서 세계 제일이었던 대영제국의 시대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다.

유럽에서도 거리를 두고 미국과도 일체는 아니라는 영국 독자적인 외교철학은 그 나름대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유엔이나 다국간 교섭의 마지막 합의서를 만드는 장면 등에서 영국 외교관이 사이에 들어 타협점을 찾아내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 그것은 영국이 오랫동안 길러온 외교철학을 익힌 외교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섬나라인 영국은 예전부터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또 그 때문에 우수한 인재가 많이 외교관이 되었다. 실제로 최근까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양 대학의 문과 계 졸업생의 취직 지망의 1위는 외무부였다. 덧붙이면 2위는 재무부, 3위는 BBC방송, 4위는 잉글랜드은행이다. 단 아주 최근에 1위가 외무부 지망에서 재무부 지망으로 바뀌었지만.

정치의 세계에서도 외교 중시는 달라지지 않는다. 역대 수상의 대부분은 외무장관 경험자였으며, 내각 내에서도 외무장관이 선두 각료로 꼽히고 있다. 대처에게 교육장관의 각료 경험밖에 없는 것은 수상의 조건으로 상당히 마이너스였으나, 특히 외무장관 경험이 없는 점이 나쁜 영향을 주었다. 외국에 대해 무식하다는 모멸적 말이 몇 번이나 매스컴에서 거론되었다.

대처 자신도 외교에 약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보수당의 동료들 특히 상류계급 출신자는 젊을 때부터 유럽을 왕래하고 교양으로 프랑스어를 익혔으나, 대처는 유럽에 간 건 신혼여행이 처음이며 프랑스어를 배울 기회도 없었다. 의원으로서 그녀의 전문은 경제이며 외교문제에 머리를 들이민 적도 없었다.

그러나 대처에게는 필요야말로 행동의 원천이었다. 당수가 된 해, 룩셈부르크, 프랑스, 서독, 루마니아, 미국을 순회했다. 미국에서는 첫 여성 당수라 하여 각지에서 스피치를 의뢰 받았다. 그녀가 가장 주목 받은 것은 ‘여자라는 점’이었다. 어디에 가든 여성문제, 특히 우먼 리브 운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대해 거듭 질문 받았다. 그러나 대처는 우먼 리브에 공감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녀는 ‘여자’인 것을 굳이 무시했다. 필자도 대처 여사에게 “정치가로서 여자인 점이 유리했는지, 불리했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저는 우선 정치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정치가입니다. 우연히 여자임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그 대답이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