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투의 제1기 (4)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6-26 20:01:33
경제 논쟁에서 대처는 극히 능변이었다. 그녀는 보수당 당수 시절의 4년간에 많은 문제를 공부하여 온갖 문제에 다변이 되었는데,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특히 자신이 있었다. 그런 만큼 일단 이야기하면 멈추지 않게 되었다. 대처의 장광설, 그것도 결코 정열을 잃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에너지에 각료들은 오직 압도될 뿐이었다. 각료 한 명은 이렇게 술회했다.
“그녀와 이야기해봤자 결국은 그녀 한 명의 연설이 돼버린다. 그것도 지적 내용이 아닌 단순한 카탈로그밖에 아닌 것이다. 그녀의 머리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분명히 그녀는 두뇌가 명석하다. 두뇌의 문제보다 그녀가 결정하고 그에 고집하는 능력이야말로 대단하다. 그러나 반성을 위해 멈춰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녀의 전 철학적 사색이란 몇 년인가 전의 지론을 반복하는 것이다.”
대처의 경제정책에서 가장 위기적인 시기는 1980년 8월부터 81년의 예산 편성까지였다. 이 시기에 대처는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그 정책철학, 사상, 삶의 방식의 전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해도 된다.
1980년에 들어서자 대처의 긴축 재정 결과가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나타났다. 인플레 율은 이 해 5월에는 21%에 달했고, 실업자도 1935년이래 처음으로 2백만 명을 넘어섰다.
텔레비전은 매주 ‘금주의 실업’을 막대그래프로 보여주었는데, 그 막대는 늘어나기만 했다. 중소기업의 도산 건수도 늘기 시작하여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에 해당하는 영국산업연맹은 ‘가장 어두운 4계보’를 발표하여 대처 정권을 비판했다. 대처가 존경하던 전 수상 맥밀런도 텔레비전을 통해 “가혹한 정책은 산업을 파괴한다”고 발언했다. 또 히스는 의회에서 “정책이 변경되지 않으면 불황은 비참한 결말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대처는 정책의 변경은 소득 이상의 돈을 빌려 써버리는 것과 같으며, “남의 포켓에 손을 넣는 사내의 모럴”이라고 단정하고, “현재 걷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이며 앞으로도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 해의 3월 예산에서 산업계, 노동계, 거기에 보수당내에서도 통화주의의 방침을 고쳐 경기 자극 정책을 취하도록 압력을 가해왔다. 왕립경제협회 회장과 전 정부의 경제고문을 포함한 저명한 경제학자 등 364명도 서명을 넣어 신문에 의견 광고를 게재했다.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인플레를 항구적으로 컨트롤하고, 거기서 생산과 고용이 자동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보는 정부의 사고방식은 경제이론의 뒷받침도 그것을 증명하는 아무 것도 없다.
현재의 정책은 불황을 심각하게 만들고, 영국 경제의 산업 기반을 무너뜨리며, 사회적 정치적 안정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통화주의자의 정책을 거부하고 어느 정책이 지속적 경제 회복에 가장 유망한지 신속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이 해 3월 노동당의 좌경화에 반발한 로이 젱킨스(Roy Harris Jenkins) 등이 중심이 되어 사회민주당(사민당)을 결성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