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현실적인가?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시민일보
| 2007-07-19 20:27:45
1930년 대공황기 당대의 이론가였던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팜 덧(Palme Dutt)이 1918년에서 1936년의 세계정세를 분석한 ‘세계정치(World Politics)’를 1936년에 내놓자 유럽 좌파 운동은 충격을 받는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모순을 명료하게 분석하고, 전쟁의 위험을 날카롭게 예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팜 덧의 책도 한계는 있어서 독점자본의 배타적 지배가 가져오는 갈등이 대립적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만 인식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들의 생존전략이 가진 유연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말았다.
한편 이 시기 영국 런던에 가 있던 트리니다드 출신 마르크스주의자 씨.엘.알. 제임스는 팜 덧의 저작이 구조적 모순의 분석에만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대중들의 선택에는 깊이 주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그는 세계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을 넘어서서 대중들의 현실적인 요구와 정치적 선택이 보다 중요한 실천적 의미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파시즘의 등장은 자본주의 체계의 위기적 징후이며, 이는 결국 제국주의 전쟁을 거쳐 자본주의의 결정적 패배로 연결될 것으로 보았던 팜 덧은 대중들이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으로 낙관했다. 당시의 국면은 자본주의가 수세기에 몰려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파시즘으로 요약된 독점 대자본과 군사주의 세력의 대 동맹 체제는 도리어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을 기반으로 하여 공세적 국면을 주도했고 유럽 좌파는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지 않을 수없게 되고 말았다.
이 시기와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 우리당의 침몰이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위기라고만 진단하면, 진보정당의 대중적 정당성이 확보되고 대중들의 선택이 진보적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도리어 이러한 시기가 자칫 진보정치의 위기까지도 불러올 수 있는 구조적 수세기이자 우리가 예상치 못할 매우 위험한 국면은 아닐까?
대중들의 현실적 요구가 가진 동기와 기대를 겸손하게 경청해야 한다. 가치와 목표, 그리고 방식이 혹여 진보적이 아니라고 해서 함부로 묵살하거나 비판할 일이 아니다. 대중들이 진정 아파하는 자리에 가지 못하는 진보정치는 그걸로 이미 패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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