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 철군 카드로 부시를 압박하라
손석춘 (前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시민일보
| 2007-07-31 20:45:42
“탈레반과 정치협상은 없다.”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의 ‘선언’이다. 사뭇 용기가 묻어나는 발언이다. 30일 워싱턴 교외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과의 정상회담 끝에 한 말이다. 부시의 말은 아프가니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한국인 인질을 직접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말 그대로, 직접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연관되어 있다. 한국인 인질의 석방조건으로 탈레반이 제시한 수감자 석방을 미국은 단호하게 거부해왔다. 테러리스트와 타협은 없다는 사뭇 의연한 논리다.
하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 의문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첫째, 탈레반은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다.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탈레반은 없다. 탈레반은 ‘이슬람경전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란 뜻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침략해온 옛 소련군과 싸웠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해 들어가기 전까지 엄연한 아프가니스탄의 정부였다.
둘째,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미국인이어도 과연 조지 부시가 원칙론만 밝힐까라는 의문이다. 미국인 20여명이 탈레반에 납치되어 살해위협을 받을 때 과연 미국은 ‘한가한 이야기’를 할까.
조지 부시 정권이 테러리스트와 정치협상은 없다고 살천스레 선언함으로써 탈레반은 더 강경 노선으로 쏠릴 게 분명하다. 탈레반 대변인은 이미 강조했다.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협상시한을 설정했지만 아프간 정부가 시한에 주목하지 않았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이 제시한 시한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뒤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미국이 침략해 들어가 세운 정부 아닌가.
그래서다. 살해당한 한국인, 지금 이 순간 공포에 잠겨있을 인질들의 슬픔과 고통이 주는 교훈을 뼈아프게 새겨야 옳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신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데 더없이 냉정하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국인의 생명은 ‘신성시’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 국민은 아니다. 보라.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이라크에서도 얼마나 숱한 민간인이 무차별 폭격으로 숨졌는가. 베트남 전쟁 때도 마찬가지다. 아니 멀리 갈 이유도 없다. 이미 한국의 저 빛나는 오월항쟁 때도 미국은 민주시민을 학살하는 전두환 일당을 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미국의 탓이라며 미국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의 선택이다. 노 정권은 민주시민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파병했다.
국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차례차례 죽어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아프간과 이라크에 파병한 게 큰 과오임을 우리 모두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고 김선일이 비명에 숨졌을 때 이미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음을 노 정권에 경고한 바 있다.
탈레반은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다. 자신의 나라를 침략해 들어온 외세와 싸우고 있을 따름이다. 어차피 연말에 철군할 깜냥이라면 그것을 앞당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다.
적어도 즉각 철군을 ‘무기’삼아 저 냉정한 부시 정권을 압박할 수 있다. 그렇다. 당당하게 미국에 할 말을 할 때다. 우리 국민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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