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문화공간

김민환 (고려대 교수)

시민일보

| 2007-08-07 19:45:13

{ILINK:1} 영국이나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그런 나라를 우리가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큰소리치는 이가 있다.

런던이나 로마 거리를 걷다보면 수백 년 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거리도 좁기 짝이 없다.

재개발 자체를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다.

그런 퇴락한 도시 풍경을 보고 만만하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경제력 자체를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나라와 격차가 크다.

1인당 GDP만 해도 영국은 3만 달러를, 이탈리아는 2만 8천 달러를 넘어서, 환율 덕분에 2만 달러를 갓 넘은 우리보다는 훨씬 높다.

국제사회에서 위상도 우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높다.

유네스코 분담률은 두 나라가 다 우리나라보다 서너 배가 높고, 유엔개발기금 분담금은 이탈리아가 열배, 영국이 열대여섯 배에 이른다.

문화지표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두 나라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공공도서관은 두 나라가 모두 우리나라보다 10배가량 많다. 영화관 스크린 수도 두 배가 훨씬 넘는다.

문화상품 수출량은 이탈리아가 우리나라보다 네 배 가깝게 많고 영국은 스무 배도 넘는다.

가계지출에서 문화여가비 비율이 이탈리아는 4.4%로 우리나라의 4.0%에 비해 약간 높지만 영국은 7.9%로 우리보다 두 배가 높다.

이런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는 좀 나아졌지만 문화적으로 아직 멀었음을 실감한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졸부 비슷하게 보고 있는 데 거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얼마 전에 런던을 여행한 바 있다.

테임스 강변에 여행객이 쉴만한 공간이 여러 군데 있으려니와 테임스 강에서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극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극장에서는 영화는 물론이려니와 ‘맘마미아’나 ‘라이언 킹’ 같은 유명한 뮤지컬을 몇 년에 걸쳐 공연하고 있다.

뉴욕의 뮤지컬 기획자도 런던의 공연 상황을 살펴 런던에서 히트한 것은 뉴욕으로 가져간다고 한다.

뉴욕에 가도 바다나 강은 접근하기도 쉽고 그 주변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어 있다.

자연과 문화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놓은 셈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품격 있는 사회를 위해
우리 한강은 어떠한가?

강변에 사는 사람들이 둔치나 다리 밑에 돗자리를 깔고 더위를 식히는 정도다.

한강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은 접근하기도 어렵지만 돗자리 깔고 앉아 있으려고 거기까지 갈 이유도 없다.

한강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단지는 조망권 덕분에 투자가치가 높다지만 문화와는 관계가 없다.

한강에 나간 김에 영화나 뮤지컬을 보고 올만한 공연장도 한강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한강을 치수의 대상으로나 대하고 한강변을 투자가치로만 저울질 하는 상황에서 문화가 넘실대는 문화강국을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희망을 가져도 된다.

서울시가 한강에 인공섬을 만들어 공연장과 갤러리, 영화관 등을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인공섬이 들어서는 2009년 이후에는 한강 풍속도가 선진국형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공연장을 채울 수준 높은 공연물을 만들 능력이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새 문화공간은 그 가능성을 창출할 것이다.

한강뿐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강동구에서 강서구에 이르는 긴 한강 주변 곳곳에 재개발할 곳은 많고 그럴 경우 꼭 문화공간을 많이 마련해야 한다.

고가의 아파트는 즐비해도 문화는 없는 졸부의 나라라는 바깥 시선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며 사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화 인프라는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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