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초원의 솔롱고
맹 형 규 (한나라당 의원)
시민일보
| 2007-08-30 19:56:02
지난 여름 열린의사회의 의료 봉사활동에 참석하기 위해 짬을 내서 몽골에 다녀왔다.
금년에는 두 개 팀으로 나뉘어 A팀은 북쪽의 오지 헙스굴주에서 B팀은 고비사막의 던고비주에서 각각 진료활동은 벌였다. 두 팀을 합치면 100명이 넘는 대식구이다.
후원 회장겸 자원봉사자인 나는 당내경선 때문에 전체일정을 소화할 수 없어 사흘 만에 다녀오는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B팀이 간곳은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던고비주의 만들고비마을, 황량한 고비 사막 한 가운데에 위치한 궁벽한 마을이다.
버스로는 7시간, 짚차로는 5시간 정도 걸리는 오지이다. 한국 같으면 승용차로 세 시간 정도 거리인데 가는 길이 험해서 고생을 좀 해야 한다.
곳곳에 파여 있는 웅덩이 덕에 자칫 긴장을 풀었다간 허리 다치기 십상인데 내과 이영미선생은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붕 떴다 떨어져 팔과 허리에 부상을 입고 많은 고생을 했다.
한방 박형선원장(단장)은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드님을 데려왔는데 뭐가 그리 신나는지 귀여운 얼굴이 연신 싱글
벙글 이다. 아이는 아이인가 보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특히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많이 참여했다.
그들에게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을병원에 마련된 진료소엔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내가 하는 일은 접수 보는 일이다. 수백 명의 진료희망자들을 차례차례 면담하면서 필요한 진료과목을 정해주고 해당의사 선생님에게 보내주는 일이다.
말은 쉽지만 현지인 통역들도 기피하는 일이 바로 접수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다보니 질서잡기도 쉽지 않고 또 현지 실력자들(?)이 통역과 짜고 끼워 넣기를 하는 바람에 자칫 난장판이 되기 십상이다.
지난해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통역이 처음 보는 명단을 들고 이름을 차례차례 부른다. 그 명단이 뭐냐고 물으니 일찍 온 사람 이름을 순서대로 적어 논 것이란다.
이름 적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제차 물으니 현지 국회의원 보좌관이 준 것이란다. 아마도 현지 지구당과 연결되는 사람들의 특혜명단인 듯싶었다.
접수를 잠시 중단하고 진행 팀과 논의한 결과 300명의 명단 가운데 100명만 일단 인정해 주되 운영의 묘를 살려 노인과 어린이를 중간 중간 끼워 넣기로 하고 그 후에는 줄선 순서대로 접수를 받기로 했다.
현지 나란차차의원은 총리를 지낸 거물정치인으로 현재 건설부장관을 겸하고 있는 인물. 지난해 몽골 방문시 보드카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눈 일도 있는 나와는 친숙한 사이이다.
마침 부친상을 당해 울란바트로에 가있어 진료현장에 나타나지는 못했는데 후덕한 인품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대표적인 친한파이다.
평소 특혜나 빽에 대한 혐오증을 갖고 있는 터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란차차 의원의 면을 봐서 한번은 넘어가기로 했다.
간절한 눈으로 줄서서 기다리는 환자들을 하나하나 접하면서 고교시절 강원도 삼척군 벽지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할 때 만났던 사람들 생각이 났다.
서울의 일정이 바빠 도착 다음날 오후 바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울란바트로로 가는 길에 다시 본 몽골대초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마침 전날 밤 비가 내려 먼지하나 없는 길을 덜컹덜컹 달려가는데 사막을 벗어나니 초록빛 대평원위에 무지개가 섰다.
선명한 무지개를 보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어머니가 전씨를 가졌을 때 무지개타고 내려오는 옥골선풍의 선비를 보는 태몽을 꾸었다던 1980년 봄 어떤 아첨꾼이 썼던 글이 왜 갑자기 떠오를까. 무지개는 몽골어로 솔롱고이다.
솔롱고는 그 나라에서 희망을 의미한다.
몽골 대초원의 솔롱고. 그것이 선명한 만큼이나 우리의 희망도 선명히 눈앞에 다가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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