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를 표로 계산하면 위헌

전 대 열(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시민일보

| 2007-09-10 20:13:54

우리나라에 여론조사가 도입된 역사는 짧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활용되고 있는 여론조사를 절대적 평가기준으로 잘못 받아드린 한국에서는 걸핏하면 ‘여론’을 내세워 만고불변의 진리인양 행세한다. 여론조사의 시작은 기업에서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고 얼마나 팔릴 것인지 소비자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점포 종업원들이 고객에게 직접 질문방식을 택했다. 조사범위가 확대되면서 전문적인 여론조사기관이 생겼다.

이에 따라 투자의 범위도 결정될 수 있다. 무턱대고 내 물건이 좋으니까 사가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엄청나게 큰 생산설비를 갖췄다가 막상 외면당하면 끝장이다. 여론조사는 이런 경우에 비교적 용이하게 써먹었고 사업조절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다보니 여론조사의 활용범위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이 정치 분야에 도입된 일이다.

어차피 국민의 인기를 바탕으로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속해있는 정당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알 필요가 있다.

조사표본의 선정은 조사기관에서 임의로 정하는 수가 대부분이다. 대개 1000명 내외를 기준으로 삼는다. 인구 3억인 미국이나 4천만에 불과한 한국이나 어지간한 여론조사는 똑같다. 그것은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여론을 대강 어림잡아보자는 것일 뿐 그것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것이 변형되어 여론조사를 일반투표와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조사기관에서는 신뢰도를 플러스 마이너스 몇 프로라고 발표하여 정확성을 강조하지만 투표지도 없으면서 투표한 것과 같은 계산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여론조사가 국민의 생각을 일부 간취할 수 있는 효용성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다음 득표 전략을 짜는데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표로 계산하면 안 된다.


이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호도냐, 지지도냐 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대두했는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따라서 여론조사를 전적으로 신용해서는 안 된다. 참고로 그쳐야 한다.

이런 여론조사를 가지고 노무현과 정몽준은 룰렛게임을 했다. 대통령후보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사항을 한낱 여론조사로 끝장낸 것이다. 그 동안의 순위에서 약간 앞섰던 정몽준이 노무현의 역발상에 끌려들어갔다.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의 출현으로 나타났다. 건국 이후 정당정치를 해온지 60년이나 되었으면서도 정당정치의 진면목을 정당인들이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으니 한심하다. 한나라당에서 서울시장 경선 때 맹형규는 당원과 대의원의 지지를 받았으나 한줌도 안 되는 여론조사에 밀려 오세훈에게 뺏겼다. 박근혜 역시 이기고 졌다. 정동영도 여론조사에 밀려 손학규에게 1위를 내줬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여론조사는 1인당 6표로 계산하는 어처구니없는 합의하에 시행되었다. 자기들끼리 사전에 양해한 사항에 제3자가 가타부타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1인1표를 철칙으로 삼고 있는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한 일이다. 우리 국민은 헌법의 규정에 따라 평등권을 가지고 있다. 돈 많은 사람이 투표권을 더 갖는 것은 주주총회 때뿐이다. 표의 등가성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를 무시한 여론조사의 투표간주행위는 각 정당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될 양상이다. 헌법을 무시한 정당의 행태를 제재할 수 있는 기관은 중앙선관위다. 선거를 주관하는 선관위가 정당의 결정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이런 작태는 계속할 것이다. 여론조사를 투표행위로 보는 것은 비밀투표의 원칙에도 위반할 수 있다.

포퓰리즘에 끌려 다니는 여론조사의 맹점은 하나 둘이 아니다. 상대적 평가기준을 절대적 평가기준으로 삼는 모순을 시정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올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는 여론조사의 마술에 걸린 기형적인 상태로 시행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헌법의 원칙이 지켜지는 선거가 되었으면 한다. 각 정당과 선관위가 이성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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