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절망을 넘어

이 태 복(前 보건복지부 장관)

시민일보

| 2007-12-26 17:38:21

지난 주에 태안의 구름포해수욕장에 다녀왔다. 2백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였다. 구름포는 국립해상공원으로 해안의 절경이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만드는 곳이었다. 이번에는 거꾸로 절로 탄식이 나왔다.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기름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원봉사자들이 아무리 걷어내도 시꺼먼 해안의 모습은 끝이 없었다. 닦고 걷어내고, 닦고 걷어내고...

현지의 분노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충돌과정과 초동대처다. 왜 유조선이 국립해상공원지역에서 정박했으며 교신불통이 말이 되느냐는 의구심이다. 그리고 기름이 쏟아지는 유조선을 왜 며칠간이나 내버려뒀느냐는 것이다. 미숙한 해수부는 말할 것도 없고, 사고 직후 초기에 군특수부대 출동 등 범정부차원의 조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해상 방제훈련을 했다는 해수부의 큰소리만 믿고 이번 일을 맡기는 바람에 대량유출을 사실상 방치했고, 구름포를 비롯한 연안지역에 이미 기름이 몰려오고 난 뒤에야 뒤늦은 방제선을 쳐 다 죽게 생겼다는 원망이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크지 않은 세 군데 구멍을 신속하게 막으려면 해경수준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국방부의 초기개입이 절실했는데, 왜 그런 조치들이 강구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임기 말의 해이해진 기강 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능했다. 현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방제선을 쳐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는데도 기름띠가 몰려든 뒤에야 행정조치가 이뤄졌다니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피곤에 지친 현지 아낙네들이 우리들의 손을 잡고 “그래도 이렇게 국민들이 도와주시니 갑갑한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며 개미떼처럼 해안가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을 봐요! 증말 고맙지유!” 그러면서도 얼굴에 남아있는 수심은 걷히지 않았다. 앞으로 생계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기름이 연안에 가라앉고 바위에 붙어있어 어패류나 수생식물이 다 죽게 되어 각종의 해산물은 이제 끝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으로 먹고사느냐고 한숨지었다. 횟집이나 펜션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3~4억의 은행빚을 지고 있는데, 손님 하나 없는 실정에서 무슨 수로 버틸 것인가? 파산이 뻔하고 자살자도 나올 것이란 얘기였다.


특히 천수만 지역은 서해안 어족의 산란지인데 기름이 범벅이니 바다어장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사실 필자의 고향인 보령시 천북은 광천김으로 알려진 김의 생산지이고, 굴의 산지로도 유명했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김발에 파래가 붙지 않고 굴도 자라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한참 먼 서산지역에 방조제 공사소식이 들려왔고, 천수만으로 유입됐던 민물이 차단되고 해류가 바뀌면서 연안어장이 황폐해졌던 것이다. 정주영씨는 서산 방조제의 신화로 유명해졌지만, 고향사람들에게 준 한숨과 분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다.

태안지역의 기름 오염이 외형적으로 어느 정도 수습되면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복구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태안과 서산, 홍성, 보령, 서천, 군산 등 서해연안지역 어민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 절망의 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되돌리려면 재난지역선포와 형식적인 피해보상이 아닌 피해주민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특별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절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사람들이 손길이 닿지 않고 있는 섬으로 28일 2차 봉사활동을 떠난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서 열심히 봉사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젊은 세대에 대한 희망이 솟아났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일이다. 이만선 5대거품빼기 운동의 태안본부 고문(전 군의회의장)과 이영수 상임대표(군의원), 김을회 공동대표가 현지안내와 봉사활동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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