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사람들’

유 창 선(시사평론가)

시민일보

| 2007-12-27 18:43:31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 안희정씨가 대선 결과에 대해 입을 열었다.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민주개혁세력이라 칭해져 왔던 우리 세력이 우리 대에 이르러 사실상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결말을 보게 했으니 우리가 어찌 이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우리의 이 노력이 국민과 우리 세력 다수의 합의와 지지를 얻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의 변화와 개혁에 실패했습니다.""

‘폐족'이라 하면 '왕조 때, 조상이 형(刑)을 받고 죽어서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족속'을 가리키는 말이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이제는 ‘친노'의 자손조차 벼슬을 할 수 없게된 처지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동안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직을 맡아 ‘참여정부 실패론'에 항변하며 그 성과를 주장하던 안희정씨였다. 그의 입에서 ‘실패'를 인정하는 말이 나오고, ‘폐족'이라는 말까지 아온 것은 커다란 자세 변화이다.

이명박 후보의 압승이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해석에 굳이 거역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워낙 성난 민심의 실체를 보았기에 '친노'의 입장에서도 더는 할 말이 없었을지 모른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제발 오만과 독선의 모습을 버리고 국민의 소리에 겸손하게 귀기울이라는 주문을 수없이 해왔건만, 결국 이런 지경이 되어서야 정신이 든 것인지 모르겠다.

이어서 여러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친노세력의 결사체였던 참평포럼이 곧 해산될 것이라 한다.

대선 패배 이후 친노세력이 범여권 내에서도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완전히 정리된 것일까. 친노세력은 정말 자신들을 '폐족'으로 생각하며 자기성찰의 단계로 들어간 것일까.

안희정씨가 다음달 초에 출판기념회를 갖고 총선 출마 의지를 밝힐 것이라는 소식도 함께 들린다. 충남 논산에서 민주당 이인제 의원과 대결을 벌일 것이라 한다. ‘폐족'이 국회의원 자리에 도전하는 모양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참여정부 아래에서 뜻을 펼쳐볼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안희정씨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그가 내년 총선에서라도, 정치적 뜻을 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 때는 ‘노무현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선거를 치러야 할 것이다.

또 하나, ‘폐족'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있다. 훈장 이야기이다. 참여정부에서 1년 이상 정무직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 가운데 47명에게 훈장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문수 전 경제보좌관,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 이정호 전 시민사회수석비서관, 이렇게 4명의 전직 청와대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관례일 뿐이라는 것이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어쩐지 지켜보는 마음이 불편하게 된다.

박기영 전 과학기술보좌관은 황우석 전 교수의 줄기세포 조작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정문수 전 경제보좌관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났다. 논문표절 논란으로 물러났던 김병준 전 부총리는 ‘세금폭탄' 발언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던 인사이다.

한편에서는 ‘폐족'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훈장' 이야기가 나온다. 어울리지 않는다. 자칫하면 ‘위장 폐족론'이라는 의심을 사기 쉽다.

좀더 진정성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말로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 석고대죄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라면, 훈장이라도 고사하는 모습을 보여라.

지금은 ‘친노'가 훈장을 받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까짓 훈장 하나가 문제여서가 아니라, 좀더 진지한 성찰의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대선에서 성난 민심을 보여준 국민에 대한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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