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스트레스에 극단적 선택… 法 “업무상 재해 인정” 판결
황혜빈
hhyeb@siminilbo.co.kr | 2019-04-09 17:05:00
[시민일보=황혜빈 기자] 업무 변경으로 인해 부담감을 느껴 표명한 사직 의사를 철회하려 했다가 거절 당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직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한창훈 부장판사)는 직원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전직 처분 이후 의사와 유족에게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로 호소했고, 그 스트레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경력이나 해당 업무의 방식에 대한 평가 등에 기초한 것"이라며 "A씨의 우울증이 전직 처분으로 발병했거나 더 깊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의 업무를 바꾸는 과정에서 충분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실무자인 A씨로선 사업 중단을 건의하거나 실패했을 때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 두는 등의 조치를 하기 어려워 퇴사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퇴사하게 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는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또 “법률적으로도 A씨가 표명한 사직 의사는 실제로 계약의 합의 해지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철회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철회를 받아들이지 않은 회사에 대한 원망과 자책 등 괴로움이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에서 10년 동안 일해왔던 A씨는 2015년 갑작스레 해외 발전소 관련 입찰 업무를 맡게 돼 사직 의사를 밝혔다.
회사가 맡긴 업무가 생소하고, 실패 위험성도 높아 자신의 책임이 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서였다.
그 후, 우울증 진단도 받은 A씨는 사직 의사를 철회하고 휴직을 요청했으나 회사 측은 이미 A씨의 후임자를 뽑았다며 거절했다.
거절당한 그는 한 달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씨의 유족은 이 같은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 등을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이 이를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A씨가 다른 이유를 들어 사직 의사를 표명한 만큼 회사가 '전직 스트레스'가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2심은 1심과 같이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았던 만큼 충분히 다른 부서나 업무로 전환 배치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며 "그런데도 이를 거절한 것은 A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회사가 알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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