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서다
고 진 화(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8-01-24 19:35:08
서해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100만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바다의 기름띠가 사라지고 검은 모래가 하얗게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많은 국민이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시프린스호 사고가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발생한 데 이어 또다시 전대미문의 11만 톤 원유유출로 서해안에 들이닥친 환경 대재앙은 5159ha의 양식어장을 폐허로 만들었고, 황금어장을 자랑하며 25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태안 해안국립공원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유출된 원유는 태안 일대뿐만 아니라 멀리는 제주도 연안까지 수산자원을 오염시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던 주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또한 기름 유출은 어장피해 외에도 생태계에 큰 상처를 남긴다. 갯벌이 초토화되고, 바다 생물이 몰살되며, 철새의 떼죽음도 예상된다. 태안을 넘어 서남해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사고 여파가 복구되어 지역주민이 다시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갈 날이 언제가 될지, 파괴된 생태계가 언제 회복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한번 훼손된 자연과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이번 사고는 유출된 기름 양에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인 만큼 직·간접적인 피해액도 천문학적 규모가 될 전망이다.
예상치 못했던 사고였지만, 원인은 결국 인간의 부주의와 방심이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분명한 인재라는 뜻이다.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한 무질서 의식, 위험 불감증, 방재대처 시스템의 부실 등이 곧 재앙의 씨앗이 되었다.
또한 너무 안이하고 소홀한 사후 수습책으로 그보다 몇 배 큰 피해를 부르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초대형 단일선체 유조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이번 사고가 인재였음을 말해준다.
태안은 지금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기름 오염으로 생계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연이어 삶을 포기하고 5만 가구에 이르는 피해 주민들은 당장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에도 숨가쁜 상황이다. 서해안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만큼 정부는 어민들의 생계 및 생존 대책을 최우선적으로 세워야 한다. 더는 탁상공론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시급히 현실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사고책임회사와 정부가 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대처에 만전을 다하길 촉구한다. 또한 효과적이고 책임 있는 방제대책을 중심으로 각 부처별 해양오염사고에 대비한 제도개선이 병행되길 바란다.
한번 훼손된 자연을 다시 회복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들어간다. 지난 12년 전 전남 여수 앞 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사고 현장은 지금도 모래 밑에 썩은 기름이 그대로 남아있다. 자원봉사자의 숫자나 복구의 속도만 자랑하기엔 이번 재앙은 우리의 치부를 다시 한번 드러낸 부끄러운 사고다. 또한 진정한 반성과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잘 수습하는 것이 피해주민에 대한 의무임은 물론 100만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에 보답하는 길이다.
사고가 난 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전세계 190개국 정부 대표 등 1만여명이 모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후변화협약 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석유 등 화석연료에 기반해 우리 사회가 누려온 물질적 풍요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낙후된 원유 수송체계라는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이제는 상생의 시대이다. 인간과 자연히 상생할 때 비로소 우리 인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은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작은 실수 하나로도 수만 년을 유지해온 균형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한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이번 사고를 통해 다시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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