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국민 눈높이 맞출 수 있나
유 창 선(칼럼니스트)
시민일보
| 2008-03-04 18:21:49
이명박 대통령이 이제서야 입을 열었다. ‘부자내각’ 파동에 대해, “우리 자체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책임을 인정했다.
더 나아가 “국민과 격리되고 현장과 격리된 청와대는 안된다. 현장 감각을 잊지 않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못듣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당부도 청와대 사람들에게 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인사파동의 책임을 인정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함을 밝힌 것은 다행이다.
이 대통령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하다. 이번 조각파동에서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기본인식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었기 때문이다.
‘부자내각’ 논란이 시작되었을 때 청와대는 “돈 많은 것이 죄일 수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능력이라는 식의 입장을 밝혔다. 사안의 심각성조차 읽어내지 못한, 판단능력의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
‘강부자’들로 채워진 ‘부자내각’ 구성이 민심을 얼마나 자극할 수 있는 폭발력 있는 사안인지를 청와대는 예측하지 못했다. 국민의 눈높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숭례문 화재 직후에 있었던 ‘숭례문 복원 국민성금’ 추진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숭례문을 그렇게 방치한 정부의 책임을 비난하는 국민정서를 읽지 못한채, 이 대통령은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제안을 덜컥 꺼냈다. 당연히 반대여론이 확산되었고, 급기야 “국민이 봉이냐”는 항의가 이어졌다.
인수위원회 활동 시기에 있었던 영어공교육 강화 방침도 마찬가지였다. ‘어륀지’로 상징되는 인수위의 영어 올인 행보는 여론의 반발에 직면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 회의에 참석하면서까지 힘을 실어주었다.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대통령은 인수위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째서 시작하자마자 이같은 민심 엇박자가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CEO 출신이다. 그래서 언제나 효율성을 우선적인 가치로 삼으며 수직적인 지시에 익숙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을 살피지 않고, 특히 민심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밀어붙이는 모습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고 견제해줄만한 주변의 장치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 주변에서 최소한의 정치적 감각을 갖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장치가 있었다면, ‘부자내각’ 파동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미연에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주문을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했지만, 그 주문을 잊지말아야 할 사람은 바로 이 대통령 자신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평가받은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언제나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믿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던 결과이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보다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가 더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 CEO 출신이고 재력가이다. ‘부자내각’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듯이, 그의 인맥은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눈높이가 서민들과 같은 지점에 있지 못하고 자신을 둘러쌌던 상류층에 맞춰지기 쉬운 이유이다.
이번에 부동산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한 후보자들이 해명이라고 꺼낸 얘기들을 들어보면, 그들의 눈높이가 일반 서민의 그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알게 된다. 엄청난 거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패는 민심읽기를 제대로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자내각’ 파동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긴 교훈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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