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이 거짓말 한 적 있던가
이 기 명(칼럼니스트)
시민일보
| 2008-03-10 18:23:54
1987년 5월18일 천주교명동성당에서는 5.18광주항쟁 희생자를 위한 기념미사가 봉헌되고 있었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 김승훈 신부가 성명서를 낭독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은 조작되었습니다.”
폭탄이었다. 세상을 발칵 뒤엎는 분노의 폭탄이었다. 이로부터 군사독재 하에서 신음하던 민초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민주화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독재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이 땅의 민주화를 이끌어 온 견인차였다. 국민들은 사제단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그 후에도 사제단은 매시기 독재정권의 억압 아래서 할 말을 못하고 침묵하는 국민들은 위해 늘 앞 장 서서 발언을 해 왔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시절 사제단이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지학순 주교를 비롯한 함세웅 신부 등 독재를 반대하고 민초를 어루만지던 사제들은 힘없는 자들의 희망이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온 갓 의혹들은 차마 저럴 수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국민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그러나 국민들은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다. 왜일까. 바로 사제단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사제단의 발표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믿는 것이다.
국민들이 전두환 정권이 5.18민주항쟁을 좌익폭도들의 폭동이라고 했을 때 믿었던가. 김형욱이 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발표할 때 국민이 믿었는가.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사건,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했다고 발표했을 때 믿었던가. 중앙정보부장이 치안국장이 검찰의 고위관계자들이 온갖 증거를 들이대며 발표하는데도 국민이 믿었던가.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로는 믿지 않았다. 왜일까. 그들은 늘 거짓말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사제들의 말은 믿는다. 왜일까.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나라 경제의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삼성이 그토록 아니라고 하는데도 왜 국민들은 믿지를 않는가. 야속할 것이다.
삼성이 걸어 온 발자국에 담긴 눈물은 한의 눈물이고 사제들이 걸어 온 발자국의 담긴 눈물을 민초들이 사제를 믿는 신뢰의 눈물이다. 이것이 구별 되지 않는단 말인가.
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떡 값 로비 인사들은 검찰 고위층을 비롯해서 국정원장에 내정된 김성호 그리고 청와대 민정수석 이종찬과 우리은행장 황영기다.
사제단이 이들의 명단을 발표하기 1시간 전에 청와대 대변인은 이들의 혐의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사제단이 발표도 하기 전에 미리 알아 낸 것은 독심술을 익혔기 때문인가.
그런데도 기자들은 침묵이다. 참 신통하다.
김성호 이종찬 황영기 관련 사제단의 기자회견에도 기자들이 별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은 기자들의 자유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YTN의 돌발영상은 사라졌다. 그러나 해외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라 온 ‘마이너리티리포트'편은 8일 오후 6시 현재 4만8000회 이상의 조회 수를 보인다고 한다. 왜 이 짓들을 하는가.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 이종찬 민정수석과 황영기의 이름을 들으면 슬프다. 이 나라 국민 된 사람치고 어느 누가 나라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
국민의 불신이 국력을 떨어트린다. 국민이 믿게 해야 한다. 사제단이 쌓아 온 신뢰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가.
정부가 이런 신뢰를 얻는다면 그것은 백만 대군이다. 정직해야 한다. 국민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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