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송연은 왜 정치에 관심이 없을까

김 헌 식(문화평론가)

시민일보

| 2008-04-03 18:50:11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여성이다, 뒤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말로 읽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불편하겠다. 특히 사극에서 여성들은 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벌인다, 뒤에서. 그들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왕권을 움직이는 것으로 그려진다. 일종의 안방정치의 주인공이다.

정치는 누구라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역이다. 원론적인 민주주의론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극에서 여성과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몇 가지로 요약되는데 대개는 긍정적인 것과는 멀다.

우선 정치에 무관심한 유형이다. 에서 장금은 정치에는 무관하게 자신의 재능을 살려 의학과 요리에 매진한다. 나중에 그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세운 공으로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지만, 이를 마다하고 궁을 나온다.

무관심을 넘어서서 적극적인 저항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황진이일 것이다. 황진이는 당대의 계급적 사회 혹은 남성중심적 정치 질서에 대한 저항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저항은 정치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된 정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황진이를 여성 정치의 모델로 삼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 는 이마저도 탈색시키고 전문직업 종사자로 만들었다.

정치에 관심은 있더라도 약간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우선, 남성 주인공의 정치 보조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드라마 에서 선화공주의 캐릭터나 의 소서노를 들 수가 있다. 이들은 정치 질서나 역학관계에 관심은 많지만, 결국 독자적인 정치적 중심화보다는 남성 주인공의 보조, 혹은 기여자에 머물고 만다. 이는 에서 이녹(성유리)에게서도 보이는 특징이다.

남성 주인공을 돕는 역할이 있다면, 이에 장애가 되는 여성도 등장한다. 대개는 악녀 역할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뒤에서 은밀하게 세상을 움직이는 여성들이다. 에서 정순왕후와 화완 옹주가 대표적이다.

약간 애매한 경우도 있겠는데 의 원경왕후는 충녕이나 태종의 편을 들지 않고, 첫째인 양녕의 편을 든다. 결국 주인공인 세종에 몰입하는 시청자 처지에서 호감가는 인물은 아니다. 에서 혜경궁 홍씨가 간택을 두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그녀는 오히려 성송연과 정조를 갈라놓는 악인의 위치가 된다.

이들 드라마만이 아니라 사극들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호감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항상 다소곳하고 얌전한 여성들이 주로 호감있는 여주인공으로 그려진다. 의 성송연과 의 소화가 대표적이다.

에서 인수 대비(전인화)같은 적극적인 스타일은 대개 악녀로 자리매김한다. 소화의 우군이었던 정희왕후(양미경)조차 정치에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로 철혈여인이 된다.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적인 여인, 왕실을 장악하려 했던 노회한 여정객’이라고 했다. 여성이 정치에 관여하면 이러한 말을 듣지만, 남성은 듣지 않을 말이다.

현재 대중문화 전반에 역사물이 주목을 받고 있고, 그 역사물들은 현대인의 눈을 통해 재구성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실존적인 고민을 담아내고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구시대적의 남여성 분할적인 시각을 여전히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고집하고 있다.

여성은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는 안되고 남성의 보조자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은 사극이 지금 현대 대한민국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한국사회는 여전히 여성과 정치를 그러한 구도에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딸을 이용하는 영남의 정치세력이나 서울 중구의 선거를 보라. 남성의 대리전, 얼굴 마담의 전투장이 아니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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