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먼저 고해(告解)하라
전원책 (변호사)
시민일보
| 2008-07-29 12:52:49
대통령이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 하여 난리다.
대통령 최측근인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된 것부터 논란의 대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영방송 인사권부터 방송 통신 전반에 관한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권부(權府)다. 그런 권부가 고작 다섯 명으로 구성된다. 그 중 둘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 몫인 셋 중 하나를 여당이 가지니 결국 방송통신위는 대통령 입맛대로 짤 수 있게 되어 있다. 거기에다 방송광고공사, YTN, 스카이라이프, 아리랑TV 등의 사장에 대선 당시 특보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이제 KBS, MBC 사장만 교체하면 거의 모든 방송사와 유관기관들을 대통령이 '장악하는' 셈이 된다. 이러니 야당과 양식 있는 사람들은 도를 넘는 '전횡'이라며 성토하는 것이다.
거기다 '피디수첩'에 대한 수사와 정연주 KBS사장에 대한 사임 문제가 불을 질렀다. 피디수첩 문제는 적어도 노골적인 오역(誤譯)은 드러났고, 정연주 사장의 배임 문제도 이미 사실관계는 밝혀졌다. 그런데도 피디수첩은 정권을 흔들려는 의도를 부인하고 정연주 사장은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기실 '전횡'이라면, 지난 10년‘진보좌파’ 정권이 먼저 도마 위에 올라야 한다. 해도 너무 했던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동안‘조중동’이라고 불리는 보수 신문을 포함한 소수의 언론사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언론은 진보좌파거나 친정부 성향이었다. 공영방송과 방송위원회를 비롯한 기관들의 사장, 이사, 위원들 자리는 법이 정한 야당 추천 몫을 빼고는 정권의 전리품이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송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정연주 씨를 KBS사장에 앉혔고 노조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연임시켰다. 솔직히 말해 방송을 장악한 덕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살아남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살아남았다.
2002년 대선과정에서 방송은 중립이 아니었다. 김대업이 촉발한‘병풍(兵風)’과 기양건설, 최규선 게이트는 연일 방송의 헤드라인을 타면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낙선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이 방송 덕을 보았다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였다. 그런 방송은 탄핵 당시 결정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살려냈다. 방송은 촛불시위를 부추겼으며“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지키자”고 울부짖는 연예인, 종교인, 시민들을 쉴 새 없이 내보냈다. 촛불로 메워진 광장은 일방의 주장만이 넘쳐났는데도 방송은 그런 주장이 허구일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포퓰리즘의 한가운데에 방송과 친정부 언론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정권이 바뀌자 청와대로서는 당연히 방송을 비롯한 언론을‘제자리로’돌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뒤가 켕기는 방송으로서는‘결사항전(決死抗戰)’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청와대든 방송이든 언론이 공기(公器)이며 전파가 국민들 것이라는 걸 잊은 채, 오로지 방송을 정치의 도구로 또 권력의 한 부분으로만 보고 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생리로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청와대는 안면몰수 할 수밖에 없고, 방송은 자신들의 허물은 깡그리 잊은 채 마치 공정방송을 위해 투쟁하는 투사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지난 10년을 뒤돌아볼 때 방송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오늘 철면피하게 방송의 공정을 주장하기 이전에 정직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고백하고 참회해야 한다. 보수 진보 이념을 떠나 국민들에게 스스로가 정권의 도구였다는 데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과거 군사정부일 때는 폭력과 강압에 의해 불가피한 충복 노릇을 했다는 변명을 할 수 있겠지만, 지난 10년간은 자신들의 이념에 경도되어 중립성을 잃고 자발적인 주구 노릇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지금은 고해(告解)를 할 시간이다. 그런 다음에 방송의 공정을 위해 정부가 독선적인 인사(人事)를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여야 한다. 그런 고해 없는 인사 투쟁은 방송이 정권의 정치적 반대편이라는 편향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가 언론사와 유관기관에 측근 인사를‘낙하산’으로 투입하는 것이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 10년 동안의 파행을 바로잡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명분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 명분을 위한 인사가 역시 중립과 거리가 먼 측근 인사들로만 이루어진다면 또 다른 파행을 낳을 뿐이다. 오히려 과거처럼 정권에 영합하는 방송이 판친다면, 차라리 정권의 반대파가 방송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정권과 언론이 긴장 관계에 있어야만 정권도 언론도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정권이 유착하는 시대는 전정권(前政權)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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