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당선과 한반도
전원책(변호사)
시민일보
| 2008-11-11 18:29:19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던 이라크전과 자유방임의 함정에 빠진 경제가 결국 공화당의 발목을 잡았다. 오바마가 당선되자 세계가 바빠졌다. 초선의 상원의원 경력으로 '느닷없이' 백악관을 점령했기에 지금 각국은 오바마의 정책을 연구하는 한편 당선에 따른 득실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찾느라 분주하다.
우선은 전세계가 미국이 선택한 '변화'에 대해 환호 일색이다. 이슬람 문화권과 아프리카 대륙이 더욱 그렇다. 이삼십대의 청년층과 유색인종이 중심이 된, 이 미국의 변화는 선거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직도 흑인 고위공직자가 극소수인 미국에서 흑백 혼혈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은 분명 미국이 인종의 편견을 넘어섰다는, 혹은 넘어설 수 있다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 흑인이나 유색인종이 특혜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러나 거대한 보수였던 미국이 유럽식 진보(Progressive)로 나갈 것이라는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오바마가 카터나 클린턴과 달리 일정 부분 유럽식 진보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가 성장과정에서 고통받는 저소득층을 지켜본 경험은 서민을 우선하는 정책에 나서게 할 것이다. 또 그의 현실주의적 시각은 그에게 표를 던져준 디트로이트 노동자를 위시한 노동자 그룹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대통령의 생각보다는 의회의 주류가 더큰 영향력을 가지는 나라다. 엄격하게 말해 오바마는 미국의 주류세력의 정치적 담보로 당선된 것이다. 그 주류세력은 부시 대통령의 독단에 반대하면서 클린턴 가문의 '재집권'에도 반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미국의 주류는 유럽식 사회주의를 수용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거기에다 오바마 역시 신선함이라는 무기와 부시정권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집권한 것이기에 매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작은 실책으로도 오바마 정부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캠페인에서 외친대로 이라크에서 발을 빼겠지만, 이라크로부터의 철군이 중동의 또다른 분열과 위기를 몰고 오는 촉매제가 된다면 그는 부시와는 전혀 다른 궁지에 내몰릴 것이다. 또한 오바마 자신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되었기에 그 장애가 될 수밖에 없는 진보적 정책도 제한적일 것이다. 오히려 그는 국가적 이익을 '평등'보다 앞세우는 냉혹한 마키아벨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오바마가 김정일과 그 체제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부시가 막판 북한의 핵무기를 '기정사실화'하고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면서 미북관계의 개선에 나선 것은 사실 대선을 앞두고 무엇인가 가시적 성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역시 김정일과 직접 대화에 나서겠다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긴장완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북한 핵을 용인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바마로서는 이라크 문제보다 오히려 북한 핵은 난제가 될 것이다. 북한 핵을 '공식적으로' 용인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본의 핵무장을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나라다. 아무리 미사일방어체제(MD)가 완벽하다 하더라도, 북한 핵이 기정사실로 되면 일본은 종국엔 핵무장으로 나갈 명분을 얻는 것이고, 이것은 일본 주류인 '우파'가 내심 고대하고 있는 바다.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이야말로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은 일이다. 그런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눈감아 스스로 더큰 구렁텅이에 빠질 까닭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민주당의 불변의 가치인 '인권'은 오바마가 김정일을 인정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김정일은 개방과 인권개선이 파멸로 나가는 길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고통스럽더라도 고립된 세습체제를 유지할지언정 개방으로 나가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택할 리 만무하다. 미국이 북한에 접근하는 바탕에 인권개선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한 미북관계는 끊임없이 제자리를 맴돌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나설 여지가 없다. 애초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김정일 체제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인권 정책도, 그에 수반하는 이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래서 '영혼이 없는 정부'라고 불렀다. 그러니 미국의 정권이 바뀐다한들 그 어떤 기대도 가질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북한은 반드시 무너진다. 역사적으로도 세습독재체제가 무너지지 않은 적이 없다. 그때까지 이 나라가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거기에는 국방적 자위력 외에도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동의하는 사상적 자위력이 당연히 포함된다. 우선은 이 힘을 기르는 것이 우리 모두가 나서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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