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신보영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원)

시민일보

| 2008-11-16 18:58:08

구한말,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무지했다. 조선 건국 이후 강화된 중화주의(中華主義) 세계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근대 국제질서의 체제와 현실에 편입되기도 거부했다. 경술국치(庚戌國恥)라는 치욕의 역사에 이 같은 무지와 쇄국(鎖國)이 일조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대(近代)라는 대변혁기, 그 변화를 읽지 못하고 열강들의 이권다툼에 속수무책 당했던 역사적 과오를 새삼 탓하는 이유는 오늘의 현실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모범국가, 세계 12위의 경제력, IT강국 등 오늘날 대한민국의 외형만을 놓고 본다면 구한말 약소국의 처지와 비교자체가 어렵다. 그러나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치ㆍ경제적 환경은 근대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혹독한 국가의 근본적 체질개선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체제의 특성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구화(Globalization) 등 시대적 변화의 본질을 우선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문제에 대한 진단 없이 바른 처방을 내릴 수 없으며 우리는 이미 망국이라는 뼈저린 경험을 통해 충분한 대가를 치러봤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성상 강대국 이해관계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비록 제국주의 열강(列强)에 의한 위협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세계 유일의 냉전질서가 잔존하는 분쟁지역에 대한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는 지금도 첨예한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다.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국제정치 열강과의 관계조율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핵 6자회담만 보더라도 당사자뿐만 아니라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아직까지 한반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지구화는 더 큰 시련인 무한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기술ㆍ통신ㆍ운송의 발달은 지구촌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내며 국제사회 개별 국민과 구성원 간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가능하게 했지만 더욱 주목해야할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한국과 여타 국가의 경제위기로 번져가는 속도는 과거 한 국가의 경제위기가 초래하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그 파장도 크다. 이제 한 국가의 경제단위가 아닌 지구촌이라는 경제단위가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21세기는 대외정책과 국내정책, 국제정치와 국내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며 특히 국제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자리 잡은 우리는 더욱 통합적 관점에서 제반 정책에 대한 포괄적 구상을 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퍼트남(R. Putnam)은 대외정책결정은 대외적ㆍ대내적 측면에 대한 동시적 고려와 협상이 요구된다는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론을 통해 정부가 어느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학문적으로 보여주었다. 현정부는 이 같은 관점에서 상당한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다. 쇠고기 파동과 현재의 경제위기가 그것이다. 전자는 국내적 요인을 후자는 대외적 측면을 도외시한 결과라고 하겠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 이 같은 정부의 편향된 관점의 정책결정 행태가 변하지 않았고 국민들도 포괄적 시각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놓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더욱 깨어야 한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영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제정세를 읽는 도구라는 것으로 인식되고 미국의 정책변화로 우리의 삶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국제적 시각을 갖춘 국가백년대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구한말 선각자 김홍집은 황준헌의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을 들여와 근대적 외교정책의 기틀을 만들고자 했지만 오히려 집권층은 쇄국을 선택했다. 시의적절한 정보와 대안이 있어도 이를 읽어낼 수 있는 정책결정주체의 역량이 없다면 그 자체는 무의미한 것이다. 오늘 나부터가 예리한 국제적 시각을 갖추어 나갈 때, 한국인 모두가 소외된 국민이 아닌 능동적인 정책결정자 그리고 변화의 주인공으로 자리 매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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