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은 떠났어도
신보영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원)
시민일보
| 2008-12-21 18:06:25
지난 8일 발생한 전투기 추락 참사로 가족을 모두 잃게 된 윤동윤씨의 방송 인터뷰는 보는 이들에게 큰 슬픔과 감동을 안겨 주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식들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새로 태어난 막내의 산 바라지를 위해 방문 중이었던 장모님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보내버린 그의 모습이 슬픔으로 가득하여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절망 속에서도 사고를 발생시킨 조종사를 용서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는 현지 미국 사람들을 상당히 놀라게 하고 있다. 오히려 그 조종사가 사고로 인해 매우 힘들 것이라며 정신적인 고통 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는 그의 말은 피부색을 초월해서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CNN, NBC, ABC, CBS등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방송망에서는 하루 종일 모든 뉴스에서 그의 인터뷰 장면을 방영하며 다소 놀란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종사의 무사탈출 소식은 그에게 원망이 아닌 다행이었다. 정작 자신은 심한 충격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밀려오는 슬픔에 울먹여 제대로 말을 잊지도 못하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보여주기 힘든 관용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인터뷰 장면을 보도하던 앵커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본인들이 당사자가 되었을 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털어 놓으면서 그가 보여준 숭고한 인간애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그의 슬픔 그리고 미국인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그 동안 잠시 잊혀졌던 일련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미군 운전병의 실수로 제대로 피어 보지고 못하고 가버린 미순양과 효순양의 슬픈 기억과 함께 흥분한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상당기간 동안 밤을 밝히며 한반도 전역을 반미의 극으로 몰아가고 있던 그때를 말이다. 모 방송에 출연했던 당시 한 인기가수는 방송 진행자가 해당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오자 잘못한 미군은 미워해도 미국인 전체를 미워해선 안 된다 라는 말을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인터넷상에서의 악플뿐만 아니라 심지어 흥분한 팬의 주먹질까지 받게 되었었다니 그때의 사회 분위기가 말 그대로 살벌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떤 이는 그 사건이 때 마침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결코 근거가 없는 주장은 아닌 듯싶다.
그리고 지난해 한국인에 의한 총기난사로 끔직한 인명 피해를 가져온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우리는 아직 잊지 못한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사건은 한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탓에 미국내의 반한 감정을 우려 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건이 발생한 그곳에는 이제 서른 두 명의 피해자를 추모 하는 자리가 마련 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총격을 가한 한국인에 대해서도 같은 자리가 바로 옆에 만들어 져 있다고 하는데 이는 끔직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가게 된 그의 고통스러운 정신세계를 인정 하고 받아 들이는 진한 인간애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얼마 전 필자는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계화 속에 다가오는 다민족 다문화의 시대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드려야 선진 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전 세계를 공포에 휩싸이게 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보도내용에 대해 “미국이 사기를 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블로그 글 등이나 미군 장갑차 사고로 인해 “미국 전체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라고 했다 해서 던져진 폭력은 우리가 배타성인 강한 닫힌 사회, 닫힌 마인드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더욱더 힘들게 하고 있다. 타민족에 대한 감정 조절이 아니더라도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주변을 먼저 살피는 그 마음이 바로 우리가 그 동안 자랑해온 우리 민족 특유의 자긍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투기 추락 사고의 당사자인 윤동윤씨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한국인임이 틀림이 없다. 그의 불행은 이제 되돌릴 수가 없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기에 그지없다. 하지만 그가 불행을 극복하며 보여준 사랑의 모습은 미국 전역을 눈물로 적시며 감동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기보다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미래의 한국의 모습은 그저 부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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