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회폭력비난 생뚱맞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시민일보

| 2009-01-14 18:56:58

민주주의를 망친 것은 누구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국회)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이 아팠다’면서 이번 ‘국회폭력’ 사태를 규탄했다고 한다. 또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국제적 경멸의 대상이 되다니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 민주주의와 폭력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면서 정치 선진화를 강조했다고 한다.

최근 국민을 학살한 군사독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한국의 기득권 세력이 갑자기 평화 민주주의의 화신이라도 된 듯 행동해왔다.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그 결정판이다. 국회 폭력사태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는 얘기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논리가 그 근거였다.

또, 외국인 보기 창피하다는 논리가 동원되기도 했다. 시청자로부터 맹비난을 받은 의 ‘도움상회’도 국회폭력 사태를 양비론적으로 표현하면서 외국인 기자를 배치해 이런 논리를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의 타임지가 한국 국회폭력 사태 사진을 싣자 이런 주장은 절정에 달했다. 수치스럽다는 얘기였는데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이런 ‘외국인에게 창피하다’론의 결정판이기도 했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인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폭력/비폭력 따위의 잣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이 민주주의의 적이라면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반민주폭력사태‘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민주화세력은 모두 반민주폭도가 되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시원인 프랑스대혁명도 일개 폭력사태로 격하되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고 있다. 황당하다. 민주주의는 글자 그대로 민주주의다.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얘기다. 주권자인 국민을 대리하는 정치인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여, 국가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것이 잘못되면 폭력을 써서라도 바로 잡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화염병’과 ‘짱돌’을 집어던지고 방화까지 했던 집단을 ‘민주화세력’으로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주권재민 원리가 무너지는데 사회에 소요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야말로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회가 조용하다면 대의 민주주의 원리가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는 극단적 대립으로 내달렸다. 민주주의가 살아있었던 것이다.

대립을 초래한 것은 정부다. 전혀 합의되지도 않고, 아니 합의 이전에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은, 심지어는 국민의 반대가 더 큰 법안들을 통째로 묶어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려 했다. 민주주의 원리의 파괴다. 저항은 당연하다. 이걸 두고 민주주의의 파괴라며 부끄럽다고 했다. 이런 대통령을 둔 국민을 부끄럽게 한 망언이다. 이야말로 국제적 경멸을 살 만한 일이다.

대통령은 사태를 이렇게 만든 책임당사자로서 민주주의를 개탄할 입장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국민에 대한 사과였다. 취임 후 1년을 5년처럼 느끼게 만든 일방적인 독주에 대한 사과. 권력의 독주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나, 그것에 대한 저항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나. 이건 고등학생도 알 수 있는 문제다.

대운하 혹은 4대강, 자사고, 영어, 일제고사, 뉴딜, 감세, 한미FTA, 방송법, 재벌규제완화, 사이버공론장규제 등 그야말로 ‘민주적’인 여론수렴과정을 거쳐야 할 문제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정부는 밀어붙이고만 있다.

사과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다시 살리는 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남을 탓했다. 이야말로 국민의 가슴을 치는 ‘해머’가 됐다. 독주하는 대통령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기초적인 상식을 꼭 일깨워드려야 하나?

대통령은 ‘분열을 조장하고 통합을 가로막는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해 ’정치 선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분열을 조장한 주체는 대통령 자신이다. 이번 발언은 분열을 더 부추긴 효과만 낳았다. 정치 후진화를 초래했을 뿐이다.

정치적 양극화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양극화, 즉 민생파탄이다. 이것이 정치적 양극화, 정확히 말해 정치적 대립을 부른다. 현 정부의 정책은 친부자기조로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정치적 대립이 격화된다.

이런 조건을 조성한 주체이면서 세월 좋게 민주주의 운운하는 훈계나 하는 것은 정치적 절망이다. 여기까지 가면 아예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다. 애초에 말(토론)이 부족해서 생긴 대립이었다. 말을 안 하고 밀어붙이니 몸싸움으로 발전했다. 대통령이 지금처럼 말이 안 통하는 형편이라면 후진적 대립은 더 심화된다. 정치 후진화의 끝장을 보자는 얘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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