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용의약품이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하는 나라!
곽중권 (서울시수의사회 회장)
김유진
| 2010-05-10 10:16:41
(곽중권-서울시수의사회 회장)
지난 4월 30일 동물주사용의약품 3종을 '천비'(액상추출차) 제품에 넣어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판매해온 업자와 원료공급자가 구속됐다.
식약청 조사결과, '천비'에 사용된 의약품은 가축농장을 운영하는 권모씨가 수의사의 처방 없이 ‘덱사메타손’(스테로이드계), ‘에페드린’(교감신경흥분제), ‘겐타마이신(항생제) 등 동물용의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식품에 첨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물용마취제 악용수법이 사이버공간을 통해 퍼져나가고 급기야 성범죄, 납치 등에 사용되어온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를 비롯한 수의사들은 오래전부터 마취제 등 동물용의약품이 성범죄 등에 악용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실상 국민 모두가 별다른 제약없이 동물용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모방범죄의 양산은 물론 식품을 이용한 테러 등으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반복되는 모방범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동물용의약품 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유독 동물용 의약품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사실 국내 동물용 의약품 유통규모는 인체용 의약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조사한 이들이 불법제조한 ‘천비’ 1포(80ml)에서 검출된 ‘덱사메타손’은 0.64mg이었다. 식품이 아닌 의약품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스테로이드계 약물인 ‘덱사메타손’은 1정에 0.5mg만 함유하도록 하고 있다. ‘에페드린’, ‘겐타마이신’ 또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이들 성분을 장기복용 할 경우 호르몬 분비억제 등 내분비계, 소화성 궤양 등 소화기계, 심장마비등 심혈관계, 항생제 내성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위험천만한 제품이 2만2천684포가 제조되어 1만2991포(3억9000만원 상당)가 판매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의 건강이 위협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미 판매된 제품으로 인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까하는 우려감도 지울 수 없다.
이렇듯 ‘아찔한’ 범죄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의 신속한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정부가 일러야 내년에나 시행될 수의사처방제만을 믿고 있다면 이는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모험을 벌이는 일이다.
물론 수의사처방제가 동물용의약품의 오남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이며,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제외한 OECD 국가 모두가 실시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 또한 수의사처방제의 도입취지를 존중하며, 무엇보다 약품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동물용마취제를 이용한 성범죄 문제가 불거진 데 이어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하는 식품범죄에 까지 악용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더 큰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수의사 처방제’의 시급한 도입은 물론 도입 전에라도 허술한 법체계를 틈탄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디 체계적이고, 실제적인 관리감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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