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북풍’이냐 ‘역풍’이냐

고하승

| 2010-05-27 16:17:26

편집국장 고하승

한 때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도권 지역에서 여당 후보들이 전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이런 위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을 구한 것은 이른바 ‘북풍’이었다.

실제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 선거를 불과 며칠 앞 둔 시점에 ‘북 잠수정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를 하는가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 추도식 바로 다음 날에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자 여야 후보간 초접전을 벌이던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선거 판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급반등했던 것.

그런데 ‘딱’ 여기까지가 한계다.

만일 여권이 여기에서 ‘북풍놀이’를 중단했다면, 민주당 후보들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북풍으로 재미를 본 정부와 여당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정부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유엔 안보리 회부·북한 선박의 남측해역 운항 전면불허·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남측인력 방북불허·남북교역중단·한미연합잠수함 훈련·심리전 재개 등의 강경대북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남북관계 전체를 단절하고, 한미 연합 훈련 등으로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사실상 ‘전쟁불사’를 외치고 나선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너무 나갔다는 게 문제다. 실제 한반도는 지금 전쟁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남북 긴장관계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이마트, 롯데마트 등 주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쌀과 라면, 생수 등 생필품 판매가 두 자릿수 급증하는 등 ‘사재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것 같다.

‘1번을 찍으면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나라당 후보들을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그 위력이 크고 놀랬으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북풍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겠는가.

실제 지금 곳곳에서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30대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20대의 남자라면 군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현재 군 복무중인 사람들이 많다. 30대는 전역했더라도 아직 군대 시절기억이 생생한 사람들이거나 예비군으로 있다. 예비군은 곧바로 현역으로 편성될 것이다. 20~30대의 여자라면 그런 남자들이 친구 혹은 애인 및 남편일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생명, 혹은 친구나 애인, 남편의 생녕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김미현 소장은 27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4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를 밝혔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그런데 20대와 30대의 청년층에서 급박하게 표결집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반드시 투표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20대가 42.4%, 30대가 56.2%에 달했다.

물론 이는 다른 연령층과 비교할 때, 여전히 낮은 수치다.

하지만 ‘북풍’ 이전인 지난 달 조사와 비교할 때, 크게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 조사 때는 20대가 25.4%, 30대가 36.3%로 매우 낮았었다.

20대는 17%가 증가했고, 30대는 무려 19.9%나 증가한 것이다. 바로 이들 젊은 표심이 이번 지방선거의 판세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김미현 소장도 "이번 선거의 당락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당일 투표율이고 특히 젊은층의 투표율"이라며 "당일 얼마나 투표에 참가하는가가 이번 선거의 핵심변수일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20대와 30대의 적극투표의향 층 증가는 여당에게 유리할까? 야당에게 유리할까?

‘북풍’으로 노년층의 표 결집 현상을 초래하고, ‘역풍’으로 청년층의 표가 결집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현재 판세는 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수도권 전 지역에서 이미 여야 후보 간 지지율이 역전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북풍’은 여당 후보들에게 자승자박(自繩自縛)인 셈이다.

그나저나 앞으로는 ‘북풍’이니 ‘노풍’이니 하는 ‘풍(風)’ 선거가 아니라, 여야 후보간에 정책 대결을 하는 제대로 된 선거운동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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