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가지고 그래
박상현(인천 삼산경찰서 부흥지구대)
민장홍 기자
| 2010-09-15 13:03:55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준다.
지금처럼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오기 몇 주 전 푹푹 찌던 어느 날 모처럼 가족들과 차를 끌고 여행을 다녀왔다.
짧았지만 그래서 더 값진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차에 기름도 가득 채우고 세차도 말끔히 해 여행 기분을 한껏 내고 즐겁게 다녀왔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식구들이 굳은 얼굴로 내게 뭔가 종이쪽지를 내미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이게 뭔가 싶어 받아보았더니 아뿔싸 구청에서 날아온 과태료 통지서였다. 도로교통법 32조 위반이란다. 길지 않은 운전 경력이지만 그래도 무사고에 범칙금 한번 내지 않았는데 통고서를 덜컥 받으니 쩍쩍, 자존심에 금이 갔다.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집이 구식의 단독주택 구조라 대문을 활짝 열고 차를 주차시키고 차를 뺄 때는 또 다시 대문을 열고 닫는 번거로움이 있다. 가족여행을 다녀 온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게 돼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차를 대문 앞 인도에 잠시 세워둔 것이 화근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출근 시간에 차마의 통행을 방해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도가 아닌 인도에 정차를 해 둔 것인데 그 사이 단속이 돼버린 것이다.
예전에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전직 대통령을 풍자하면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유행어가 크게 히트한 적 있다. 처음 과태료통지서를 받고서 든 생각도 그랬다.
다른 곳도 아니고 집 앞에 정차해 둔 것이니만큼 억울한 마음이 들어 구청 교통과 까지 찾아가서 항의를 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단속이 되었으니 어쨌거나 과태료를 내야 한단다.
나름대로 차가 밀리지 않도록 생각해 한 행동인데 보행자가 겪었을 불편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경찰관으로서 법 집행을 하다보면 나 역시 시민들에게 싫은 말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최대한 말과 행동을 정중히 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불쾌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범칙금을 떼는 경우에는 피땀 흘려 번 돈이 나간다는 생각에 “왜 나만 잡느냐”며 실제로 항의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 이번 일을 통해 시민의 입장도 생각해보게 됐다.
또한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언뜻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기초질서를 하나씩 지키고 실천해갈 때 결국 이 나라가 온전히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 사람은 지키지 않는데 나만 단속하느냐는 말 보다는 나부터가 먼저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사회에 더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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