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우리를 일으키는 힘

박상현(삼산경찰서 부흥지구대)

진용준

| 2010-11-24 11:40:23

박상현(삼산경찰서 부흥지구대)

한달 전 칠레의 광산에서 광부 33명이 구조되었다. 칠레 정부는 구조작업을 생중계했고, 지구촌 전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광부들의 생환을 간절히 응원했다. 광부들 전원이 다 건강히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은 며칠동안이나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드라마였다. 언론에서는 그들이 위기를 극복한 힘을 열거하면서 팀장을 맡았던 광부의 리더십을 꼽기도 하고, 제한된 음식을 조금씩 나눠서 섭취한 치밀한 생존전략을 꼽기도 했다. 또 남미 특유의 낙천적인 칠레의 국민성에 주목하는 이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서로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얼마 전, 설악산에 다녀왔다. 마침 단풍이 절정인 시기인지라 등산객들로 좁은 산길이 더욱 붐비었다. 그날 하루 봉정암을 다녀간 사람만 무려 구백여명이라고 하니 꽤 많은 숫자가 설악산을 찾았던 듯 하다. 여기 저기 가는 곳 마다 어깨가 부딪치고 길을 피해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면서도 얼굴 찌푸리는 이 하나 없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네, 안녕하세요, 조심히 내려가세요.”라는 사려 깊은 대답이 돌아오니 인사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다. 길을 걷는 나그네에게 에너지를 불어주는 것이 바로 관심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이었다. 훌륭한 경치를 구경하고, 멋진 사람들까지 만나며 한껏 좋은 기분으로 산 공기를 만끽했다.

설악산의 나뭇잎은 최고로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며, 자신을 빨갛고 또 노랗게 불태우고는 장렬히 산화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단풍철의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삶의 한 순간이지만, 나뭇잎에게는 물이 들고 곧 낙엽으로 떨어지니 죽음을 목전에 둔 꼴이다.

삶과 죽음이 이처럼 같고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근무 때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변사 관련 신고를 받고 나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지나가던 행인이 일찍 발견하여, 다행히 숨이 남아있을 때 자살을 시도한 사람을 구출하였다. 그러나 병원으로 바로 옮겼음에도 이미 뇌에 산소가 부족하여 병원에서도 앞일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가족들은 오열하고, 경찰관이나 구급대원도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그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계속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자살을 시도할 만큼 어려운 문제가 있을 것이고, 그 누구도 당사자만큼 이해하고 통감하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가까운 사람이나, 혹은 모르는 사이더라도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산에서 내려와 몸과 마음이 한껏 청정해진 것을 느끼며 서울로 돌아왔다.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 도시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들의 표정은 산에서 만난 이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도시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인사하지 않는다. 사람은 꽤 자기중심적인 존재인지라,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길 바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상대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칠레 광부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서로 격려하고 보듬으며 관심과 애정으로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했다. 지칠수록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어떨까. 그리고 곁에서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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