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숙의 영화칼럼]자본주의 세상의 종말, ‘코스모폴리스’

함혜숙

(영상번역가) | 2013-07-22 16:07:40

"어떤 것이든 무엇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지. 이놈의 돈이란 게 뭔지 모르겠어." 영화 <코스모폴리스>의 동명 원작 소설에서 큐레이터인 디디 펜쳐가 하는 말이다. 영화에서는 줄리엣 비노쉬의 입을 통해 이 대사가 나온다.

돈이란 과연 무엇일까. 화폐라든지 지폐라든지 물질적인 형태가 있기야 하지만, 그것이 돈의 본질일까. 인간이 만들어 낸 그 ‘무엇’이지만, 그렇다할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숫자들이 우리 인간을 얽매고 있는 건 아닐까.


한동안 뱀파이어 황태자로 살았던 로버트 패틴슨이 이번 영화에서는 자본주의의 황태자인 거물 투자가 에릭 패커로 등장하는데, 에릭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자유자재로 주무른다. 하지만 그 돈은 형태가 없다. 실물의 돈이 오고가는 거래가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에 떠다니는 숫자와 통계 자료만 갖고 거래를 한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방이 48개나 되고 상어가 있는 수족관이 있는 초호화 맨션(영화에선 언급되지 않지만 소설에서 묘사됨)에서 생활하고, 대형 리무진 안에서 업무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온갖 설비가 갖춰진 리무진 안에서 경제학자, 큐레이터, 투자전문가 등을 만나 회의를 하고 심지어 의사까지 불러 매일 건강검진을 받는다. 안에서 생리현상까지 해결할 수 있어 리무진에서 한 발자국도 내리지 않고 하루 24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사무실이자 집이다.


안락한 천국 같은 리무진 내부만 봐도 에릭 패커의 재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리무진 창밖으로 보이는 외부 풍경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갑자기 찾아온 경제 공황으로 거리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는데, 경제 공황의 주범으로 에릭 패커가 지목되면서 에릭은 생명의 위협에 노출된다.


경호원 토발의 경고에도 시종일관 흔들림 없이 태연하고 담담한 에릭 패커의 무표정이 더더욱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극이 전개되면서 에릭 패커는 서서히 몰락해 간다. 인간이 만들어 낸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최고의 혜택을 누리던 황태자가 결국 자본주의의 굴레에 갇혀 서서히 목이 졸리는 꼴이다.


2003년에 출간된 원작 소설은 자본주의의 어두운 미래를 예언하는 성격이 강한데, 출간된 지 10년 후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시점은 소설의 내용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난 이후였다. 이 때문에 데이빗 감독은 소설이 예언적이라면 영화는 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스모폴리스>를 보기 직전에 <월드워Z>를 봤는데, <월드워Z>가 좀비 바이러스로 종말을 앞둔 지구의 모습을 그렸다면, <코스모폴리스>는 자본주의로 몰락해 가는 현대 사회를 그렸다.


좀비는 실체가 있어서 머리라도 댕강 잘라 버리거나 좀비 바이러스 백신이라도 만들면 되지만, 실체가 없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뉴욕 경제계에서 최고의 투자가로 군림하던 에릭 패커도 자본주의와 자신의 몰락을 손놓고 뻔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얗게 빛나던 리무진이 하루가 저물 무렵, 온갖 먼지와 오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에릭 패커의 인생과 자본주의 시스템에도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력이 곧 권력이고 돈이 그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며, 재력을 쥔 사람은 동경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뉴욕 거리를 누비며 그 자체로 재력을 과시하는 흰색 리무진 안에는 인간성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다. 숫자에만 매달리는 자본주의의 상징 초호화 흰색 리무진이 부럽지 않은 이유다. 산 사람처럼 걸어다니기야 하지만 두뇌가 죽은 좀비와 다름없으니까.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