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새한송백’과 이재오
고하승
| 2014-11-12 16:23:09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의 절개를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가 권력을 잃은 뒤에도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온 제자의 의리를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한 말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최근 “요즘 새삼스레 생각나는 것이 많다”면서 트위터에 이 런 고사성어를 올렸다.
그는 대체 왜 이 시점에 그런 글을 올렸을까?
그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국회 내 개헌논의가 김빠지는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실제 이재오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우균근 원내대표 등 야당의원들과 손을 잡고 개헌 드라이브를 걸었었다.
특히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개헌모임) 고문인 그는 지난 10일 여야 의원 35명의 서명을 받아 개헌특위 구성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당초 결의안에는 새누리당 이재오 진영 김재경 홍일표 신성범 나성린 안효대 김용태 함진규 정우택 의원 10명과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등 야당의원 26명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바로 그날 정우택 의원이 서명을 철회했다. 정 의원 측은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비서진의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 다음에인 11일에는 새누리당 나성린 홍일표 함진규 의원 등 3명이 한꺼번에 서명을 철회한다며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나성린 의원은 "지난 5월 모임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에 서명했지만 당시와 비교해 개헌이 정치 이슈화되어 있는 지금의 국회 상황은 너무 다르다"며 "특위 구성결의안 서명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나 의원은 "지난 5월 순수한 동기로 서명했던 개헌특위 구성결의안을 지금과 같이 미묘한 시기에 제출하면서 저를 포함한 서명 의원에게 다시 한 번 동의 여부도 묻지 않고 제출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언짢아했다.
함진규 의원도 “서명은 지난 5월 한 것으로, 당시는 개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던 시기였으며 순수하게 검토해보자는 취지에서 동참했던 것”이라면서 “현 시점은 개헌논의가 정치쟁점화 돼 서명 당시의 취지가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홍일표 의원은 아예 서명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결의안을 제출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고, 결의안의 초안도 보지 못했다”면서 “동의 없이 공동발의자로 제출된 데에 대해 유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이 의원의 최측근인 이군현 의원도 당직(사무총장)을 맡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서명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뜻을 이 의원에게 전달했다.
게다가 개헌에 적극적이었던 야당마저도 정기국회가 본격화하자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등 ‘4자방’에 올인하느라 개헌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 국회 내 개헌 논의가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이재오발(發) 개헌 드라이브가 ‘개헌 해프닝’으로 매듭 되는 것 아니냐는 조롱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의원이 ‘세한송백’을 언급한 것이다.
이는 자신을 추사 김정희에 비유하는 한편, 마지막까지 서명을 철회하지 않은 진영 김재경 신성범 안효대 김용태 의원 등 측근 5명을 송백에 비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 자체가 대단한 오만이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개헌론을 오직자신만이 ‘정의’라 생각하고 그 길을 고집하는 것은 기개가 아니라 아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현행 권력구조가 ‘제왕적 대통령제’라며 “이제는 권력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4년중임 분권형제’,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를 개헌방향으로 제시했다.
즉 대통령은 국민이 뽑되 외교·통일·국방만 담당하고 내치는 전적으로 총리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사실상 총리가 실권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총리는 국민들이 아니라 국회에서 여야의원들이 자신들끼리 모여 선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은 반대다. 국민 10명 중 8명 정도가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반면 이 의원이 추진하는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선 10명중 고작 1명만 찬성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국민여론과 반대되는 길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추사 김정희가 말한 송백의 기개일까?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재오 의원의 아집으로 이를 두고 ‘세한송백’을 운운한 것은 한낱 코미디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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