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 감정적인 세간의 '잔혹한 잣대'가 안타까운 이유

서문영

  | 2016-06-15 14:19:35

▲ 사진제공=씨제스 문화적 감수성이란 말이 있다. 이는 문화적 현상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을 의미. 15일 JYJ 박유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여성인 A씨가 고소를 취하했다. 이로써 박유천은 '강제적 성폭행'이란 진위 여 부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러나 성폭행 사건에 휘말렸던 박유천의 이미지는 이미 타격을 받은 상태. 여기에는 문화적 감수성의 '잔혹한 잣대'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0일 A씨는 지난 4일 강남의 한 유흥 주점의 화장실에서 박유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당시 A씨는 속옷을 증거를 제출했다. 하지만 박유천 측은 “허위 사실을 근거로 한 일방적인 주장이다”며 무혐의를 입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크게 보면 두 주체의 입장이 완전히 상반됐던 것. 문제는 진위 여부가 확인도 되기 전 그럼에도 계속된 악의적 여론몰이와 대중들의 잔혹한 시선이었다.

인식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 인식에는 분별력과 정확한 판단력이 중요하나 느낌에는 감정이 크게 작용하기에 그렇다. 박유천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인식에서 비롯됐다기보단 감정에 기인했다고 보는 편이 더 명확하다. 성폭행에 대한 진위 여부가 밝혀지기 전부터 박유천에게 잇따른 '마녀사냥'과 난무하는 '억측'은 결코 정확한 인식의 결과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유천은 한 순간에 가해자 명단에서 최대의 피해자로 이름을 옮기며 국면이 180도 뒤바뀐 것은 아닐까. 성폭행 논란으로 빚어진 그에 대한 '명예훼손'과 실직적인 '이미지 실추'는 개인으로서도 연예인으 로서도 그에게 큰 피해를 유발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을 염두하거나 염려하면서 여론에 합세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전무하거나 극소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에 대한 정확 한 인식없이 여론몰이에 편승한 세태는 잔혹함으로 평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같은 현상에 진취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또 다른 '박유천', 또 다른 억측의 '피해자'는 계속될 것이다.

박유천이 겪었을 억울함은 세간에서 억측을 진실로 믿었을 때, 혹은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가십성을 더 우위로 받아들였을 때 벌어지는 형국을 극명하게 피력했다. 그렇게 박유천은 그 억측 때문에 손실을 입었다. 누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또 누가 그 손해에 대한 보상을 해줄 것인가. 수많았던 억측과 질타에 비해 이를 향한 확실한 대답은 들려오지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잔혹한 잣대'의 분명한 악독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사건에 대해 말하던 사람들은 진위 여부가 밝혀지자 그 책임성에 있어서는 '나 몰라라'하는 상태가 발생한 것. 이같은 세간의 모순은 대중문화와 팬들을 위해 우려스러운 경우가 아닐 수 없다. 박유천이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진위 여부를 넘어서 일방적인 질타를 받아야 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박유천도 연예인이기 이전에 개인이며 같은 사람이다. 그동안 그에게 열광하고 호응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최소한 진위 여부를 기다려 줄 인지상정조차 부족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박유천의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그에게도 엄연한 인권이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난이 아닌 비판으로, 감정이 아닌 인식으로, 성숙한 세간의 반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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