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좀비의 공포에 맞서며 인간성을 생각하다...화제작 등극하나
서문영
| 2016-07-13 15:12:02
모두가 평범하고 삭막한 삶을 살던 어느 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을 뒤덮는다. 국가에는 긴급재난 경보령이 발령되고 처음 겪는 일에 사람들은 우왕좌왕 하는 상황. 석우(공유)는 일에 치여 잘 돌봐주지 못했던 딸 수안(김수안)의 생일을 기념해 별거 중인 아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강렬한 음향효과를 사용해 갑작스런 상황에 걸맞은 긴박감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어 주인공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데 긴 시간을 두지 않고 장면을 금세 전환해 마치 열차처럼 빠르게 달리는 전개를 선보인다. 감독은 급한 상황에 대한 치밀한 연출로 등장인물들 각각의 특성을 단시간에, 그러나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다.
‘부산행’은 일단은 좀비물로 보인다. 동공을 뒤집고 온 몸을 비틀며 무서운 속도로 인간을 쫓는 무리는 지금껏 봐왔던 좀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차적 공포감은 이 같은 무리에 의해 조성된다. 그러나 석우와 그 일행을 본격적인 공포 속에 몰아넣는 것은 좀비가 아닌 사람이다.
이전까지 인기를 끌었던 좀비물 중 고립된 장소를 배경으로 사용한 경우가 꽤 있다. 좀비물의 정석으로 불리는 ‘새벽의 저주’의 쇼핑몰, ‘월드 워Z’의 비행기가 그렇다. ‘부산행’의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항하는 장소 역시 열차 안으로 한정돼있다. 생존자를 좁은 장소로 몰아넣는 것은 좀비의 위협을 크게 부각하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극한의 상황 속 인간군상을 들여다보는 의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부산행 KTX안에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 과거에는 정의로웠던 인간,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인간, 나약해 보였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인간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열차 안이라는 작은 공간이 곧 사회의 작은 축소판인 것.
‘부산행’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제시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실감나는 액션을 통해 흥미로운 볼거리 또한 제공한다. 감독은 관객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기차 안을 이색적으로 활용하며 한정적인 장소임에도 독특하고 영리한 발상으로 완성도 높은 밀실극을 보여준다.
영화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씁쓸하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아는 듯하다. 어쩌면 그들은 서민들을 좀비로서 규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좀비물이라는 장르로 오락적 재미만을 느끼게 할 줄 알았던 ‘부산행’은 의외의 시사점을 던져주며 마무리 된다. 영화적인 볼거리와 생각해볼 거리를 동시에 건넨 셈이다. 오는 20일 개봉.
서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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