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심, 양심적 병역거부에 또 ‘무죄’

이진원

yjw@siminilbo.co.kr | 2017-06-29 16:44:57

대법원 ‘유죄’ 판결 후 일주일만에 판결 논란

[시민일보=이진원 기자]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를 확정한 ‘쐐기’ 판결을 내린 지 불과 1주일 만에 하급심에서 또다시 무죄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청주지법 형사4단독(판사 이지형)은 29일 훈련소 입소 통지서를 받고 소집에 응하지 않은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이 모씨(23)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대안 마련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헌법 가치만을 실현하고자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헌법의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간 징집 인원의 0.2% 정도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집총 병역에 응하지 않는 것 자체가 군사력의 저하를 가져와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위태롭게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 이행의 형평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미 많은 나라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며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자 양산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대체복무의 강도를 높이고, 전문가 사전심사 제도를 마련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특히 이번 청주지법의 선고가 더욱 눈길을 끌고 있는 이유는 바로 1주일 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의 실형 확정 판결이 나온 이후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조희대)는 지난 15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 모씨(22)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현행법상 처벌 예외사유인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라며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지 말라는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안은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실형을 확정한 것은 해당 판결이 13번째로, 법원 일각에서는 올해 들어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 논란에 대해 대법원이 쐐기를 박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불과 1주일 만에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는데 대해 법조계 내부에서도 소장파를 중심으로 법과 제도의 전향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넓게 퍼지고 있음이 감지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는 2004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이 전국적으로 32건인데 이중 16건이 올해 판결된 데서 비롯됐다.

한편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 처벌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논의도 활발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 5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병역법 및 예비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서는 대체복무요원의 업무를 중증장애인 수발, 치매 노인 돌봄 등 사회복지, 보건·의료, 재난 복구·구호 분야에서 신체적·정신적 난도가 높은 업무로 지정했다.

또 복무 기간을 현역 육군 병사의 2배로 규정하고, 엄격한 복무관리를 위해 반드시 합숙 근무를 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다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종교적 병역거부 사건의 위헌성 여부를 심사 중인 만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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