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필 고하승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28일 “대한민국을 위한 역할을 숙고하겠다”라며 사퇴한 데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두 사정 기관의 수장이 임기를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정권에서 칼자루를 쥐었던 사정 기관의 수장들이 곧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한 최 원장을 향해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이런 연유다.
하지만 그들을 정치 참여로 내몬 1차 적 책임은 문재인 정권에 있다.
문재인 정권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수사나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를 집요하게 방해했다. 마구잡이식으로 인사권을 휘둘러 두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성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궁지로 내몰기도 했다.
실제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1년여 동안 윤 전 총장을 내쫓기 위해 여러 차례 무리수를 두었고, 그 뒤를 이어받은 박범계 장관은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단행하면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던 검사들을 한직으로 내쫓고 그 자리에 충성심이 강한 자들을 임명하는 황당한 인사를 했다.
최재형 원장은 월성 원전 감사를 했다가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 고발로 수사 대상에 오르는 처지로 내몰리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두 전직 수장의 모습에 국민은 박수를 보냈고, 그렇게 해서 윤석열 전 총장의 지지율은 여야 대선 주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역시 최근 지지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공식 출마 의사를 피력하는 순간 단숨에 여야 주자들 가운데 ‘빅5’에 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권의 책임이다.
문재인 정권의 전횡과 폭주, 법치의 훼손이 이들을 정치의 길로 불러낸 탓이다.
그런데도 여권은 이를 반성하기는커녕 되레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황당한 사람이 민주당 대선후보 가운데 한 사람인 추미애 전 장관이다.
추 전 장관은 29일 오전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제가 (장관 시절에 징계를 청구할 때) 본 사실만으로도 윤 전 총장은 대권 꿈을 가져서는 안 될 부적격한 분"이라며 "(제가) 출마 선언을 하고 여론조사를 보니까 제 지지율은 올라가고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급감했다. '추미애가 뜨면 윤석열이 뜬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해서는 "최고의 사정 당국 수장들이 대선으로 직행하는 것은 국민에게 대단히 모욕적인 것"이라며 "(중립자임에도 불구하고) 냉각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선으로 직행하는 것은 헌법 유린이며 국정농단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사건이다.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이 보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윤석열 전 총장을 강력한 대권 주자로 만든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설사 그의 지지율이 올랐다고 해도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윤 전 총장의 지지율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심지어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방송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한 검찰 수사를 “대선후보 라이벌 죽이기”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그는 윤 전 총장과 최 전 감사원장의 정치 참여를 '연성 쿠데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은 추 전 장관과 이광재 의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강병원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 원장의 행보는 감사원을 정치적 야욕을 위한 도구로 악용했다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며 “헌법 모욕이다. 오늘은 최재형에 의해 감사원이 부정된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용빈 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최 원장이 대통령 출마를 목적으로 감사원장직을 이용했고,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면 사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탄핵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박주민 의원은 “공직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유용한 한탕주의”라고 비판했으며, 안민석 의원은 “너무 치졸하고 조악한 결말이다. 스스로 ‘윤석열 플랜B’로 기회를 엿보겠다는 속셈이니, 참 꼴사납다”라고 했다. 정청래 의원은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하게 돼 있다”라고 쏘아붙였다.
법치를 훼손하고 그들을 정치 참여로 내몬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선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이 내년 대선에서 처절하게 심판받아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