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구조 개편 없는 개헌은 말장난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21-05-17 14: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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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 고하승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87년 체제. 즉 제왕적 대통령제를 시대에 걸맞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정치권과 학계에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된 마당이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운동 끝에 탄생했다. 처음으로 여야 합의와 국민투표를 거쳐 개정됐으나 그 이후 현재까지 34년간 낡은 헌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그동안 개헌하자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다거나, 시대 흐름에 따라 헌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제대로 추진한 적이 없다. 매번 개헌 내용과 시기 등이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 아니냐는 정치적 공방만 오갔을 뿐이다.


    실제 김대중 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여의치 않자 결국 추진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그 뒤를 이어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개헌을 논의하자’라고 제안한 적이 있으나 모두 반대에 부딪혀 진척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한 개헌 논의가 오는 6월께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박 의장의 고민은 ‘권력 구조 개편’에 방점이 찍혀 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각제니 이원집정부제 등 지금 시대에 맞는 권력 구조로 다시 개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나오는 개헌론은 엉뚱하게도 대통령의 권한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4년 중임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실제로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에서 국회의장 직속 국회 국민통합위원회 주최로 열린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제도 개선’ 토론회 발제에서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이를 ‘민주적 대통령제’로 포장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윤영석 의원도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을 다시 뽑는 대선은 또 다른 국정 실패의 연속이고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어 낼 뿐"이라며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3년이나 연장이 가능한 탓에 사실상의 ‘황제적 대통령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대통령의 임기를 현행 5년 단임에서 4년 연임으로 바꾸는 개헌안을 발의했으나 폐기 된 것은 ‘황제적 대통령제’라는 비판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건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욕심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개헌의 논의 방향은 여야 유력 대선주자들의 선택에 달렸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대통령 당선권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권력을 내려놓기 싫다거나, 아니면 정치 발전을 위해 미래 권력을 내려놓는 개헌 논의에 찬성한다거나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야 유력 주자들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나마 이낙연 전 대표나 정세균 전 총리 정도가 개헌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개헌의 핵심이 권력 구조 개편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개헌론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16일 광주에서 국민 기본권 강화와 불평등 완화를 골자로 한 개헌을 공식 제안했다. 헌법에 국민의 생명권, 안전권, 주거권을 신설하고, 헌법상 토지공개념과 국가균형발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물론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낙연표 개헌이 ‘앙꼬 없는 찐빵’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정세균 전 총리 역시 "개헌은 꼭 필요하고 빠를수록 좋다"며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그 ‘분권형’의 방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다만 "입법·행정·사법 영역 간의 분권,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권한의 슬림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권력 구조에 대한 개편 없이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 일부 권한만 제약하자는 것인지, 아니면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 혁신적인 개헌을 하자는 것인지 모호하다.


    지금 당장 개헌은 어렵더라도 대선 주자들이라면 개헌 방향을 국민 앞에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를 단절하기 위해서라도 시대에 맞지 않는 후진국형 대통령제는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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