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탐정 시대가 온다-공감과 전문성으로 여는 사회 안전망”

    칼럼 / 시민일보 / 2025-11-30 10: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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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 같은데, 남자 탐정한테 상담하기가 너무 창피해요.“
    "스토킹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경찰에 신고하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까 봐 두려워요.“
    "데이트 폭력으로 헤어졌는데, SNS로 협박하고 주변에 거짓말을 퍼뜨려요. 증거를 모아야 하는데..."

    탐정학과 교수로 25년간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여성 의뢰인의 목소리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고통스러운 문제를 털어놓을 때, 같은 여성이 들어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증거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경찰에서도 이미 이러한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인식해 왔다. 여성 경찰관들은 성폭력·가정폭력 등의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신뢰 형성과 세심한 대응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역할은 형사 사건으로 한정된다. 배우자 외도, 재산 분쟁, 직장 내 괴롭힘, 노부모 재산 편취 의혹 등은 법적 분쟁 소지가 크지만 형사 사건으로 바로 다루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처럼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민간 영역의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 탐정의 역할이 주목된다. 여성 탐정은 공권력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권력이 닿지 않는 민생 문제에서 의뢰인 곁을 지키는 조사 전문가다.

    여성 탐정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미국 최초의 여성 탐정인 ‘케이트 워른(Kate Warne)’은 1856년 핑커튼 탐정사무소에 고용되어 남성 탐정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사교 모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탐정업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녀는 변장과 위장에 능했으며, 1861년 링컨 대통령의 암살 음모를 저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 역시 2007년 탐정업법 시행 이후 수천 개의 탐정사무소와 수만 명의 인력이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본민간조사업협회 회장 ‘기쿠치 히데미(菊池秀美)’는 30년 넘게 현장에서 활동하며 여성 탐정의 전문성을 사례로 보여준 대표적 인물이다.

    문화 콘텐츠 속에서도 여성 탐정은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호주 드라마 <미스 피셔의 살인사건>의 프라이니 피셔,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은 예리한 통찰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로 사건을 해결하며 전 세계적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여성의 지능, 용기, 공감 능력을 조명하며 여성 탐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강점을 전문성으로 체계화했다는 점이다. 실제 민간조사 과정에서 여성 탐정들은 남성과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첫째, 심리적 공감에 기초한 문제 파악 능력이다. 한 여성 의뢰인이 남편의 외도 의심으로 상담을 요청했으나, 상담을 이어가다 보니 실제 핵심은 가족 재산을 둘러싼 갈등과 장기간의 정서적 학대였다. 여성 탐정은 단순히 외도 증거 수집에 그치지 않고, 의뢰인의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필요한 종합적 증거를 수집한다. 피해자의 심리와 맥락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여성 탐정의 첫 번째 강점이다.

    둘째, 자연스러운 현장 접근 능력이다. 백화점이나 카페에서 여성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은 전혀 의심스럽지 않다. 여성 탐정들은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거나, 아파트 단지 벤치에서 육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정보를 수집한다. 한 여성 탐정은 대형 사회복지단체에 직원으로 위장해 내부 횡령 및 탈세 등 비리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

    셋째, 세밀한 관찰과 기록 능력이다. 가정폭력이나 아동 학대 사건에서는 작은 상처 하나, 아이의 표정 변화 하나가 중요한 증거가 된다. 여성 탐정들은 이러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사진과 영상으로 세밀하게 기록한다. 넷째, 협력 네트워크 구축 능력이다. 여성 탐정들은 독립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이혼 전문 변호사, 심리 상담사, 여성 쉼터, 의료진 등과 긴밀히 협력한다. 이는 의뢰인에게 법적 해결과 심리적 치유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로 이어진다.

    실제 현장에서는 배우자 외도, 가정폭력, 노부모 재산 편취, 직장 내 성희롱, 스토킹 등 다양한 민생 사건에서 여성 탐정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여성 피해자들은 같은 성별의 탐정에게 더 편안하게 마음을 열고, 민감한 정보를 편안하게 공유하며, 장기간의 조사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이는 감성적 요소가 아니라, 사건 해결의 효율성을 높이는 실제적인 강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유한 강점이 있다고 해도, 체계적 교육 없이는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디지털 포렌식, 법률 지식, 윤리 기준, 현장 대응 능력 등 현대 탐정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실로 방대하다. 특히 불법적으로 수집한 증거는 법적 효력이 없으며, 도청이나 사적 공간 침입 등은 오히려 의뢰인과 탐정 모두를 법적 위험에 빠뜨린다. 미국·일본·영국 등은 탐정 교육을 법·교육·자격·감독 체계로 묶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며, 조사 윤리와 법률 지식을 필수 교육과정으로 편성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국 150개에 달하는 보안 관련 학과가 있지만, 탐정학 학사학위를 배출하는 곳은 서울디지털대학교가 유일하다.

    필자가 주임교수로 있는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는 2021년 개설 이후 현재까지 4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탐정사무소 창업을 비롯해 기업 보안, 법률사무소 조사, 보험 사고조사, 지자체 공익조사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여성 졸업생들은 가정·아동·청소년 문제와 같은 생활 밀착형 영역에서 전문성을 축적하며 현장의 신뢰를 얻고 있다.

    주목할 점은 동문 네트워크를 통한 신뢰 기반의 전문가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강·종강 시기 교류 자리에서 현직 탐정들은 후배들과 조사 경험을 공유하고, "믿을 만한 여성 동문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진다. 검증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같은 윤리 기준을 공유하는 동문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강력한 경쟁력이 되며, 실제로 졸업 후 2~3년 만에 전문 탐정사무소를 개업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탐정학은 단순한 직업 교육을 넘어, 100세 시대 여성들에게 새로운 경력 개발의 기회를 제공한다. 30~40대 경력 단절 여성들은 육아와 가정 운영 경험을 전문성으로 전환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20여 년간 축적된 경험은 청소년 문제나 부부 갈등 조사에서 의뢰인의 높은 공감을 얻는다. 시니어 여성들은 노인 실종이나 유산 분쟁처럼 관계의 맥락을 이해하고 증언을 축적하는 조사에서 강점을 보인다. 한편 젊은 여성들에게는 디지털 포렌식과 데이터 분석 등 첨단 기술과 공감 능력을 결합한 탐정이 AI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전문직 진출 통로가 된다.

    여성 탐정은 단순히 수익을 위한 직업이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억울한 피해자의 권리를 지켜주며, 가정의 평화를 회복하는 사회적 사명을 가진 전문직이다. 배우자의 외도로 가슴 아파하는 여성에게,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직장 내 성희롱으로 괴로워하는 직장인에게,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에게, 여성 탐정은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법정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피해자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여성 탐정의 진정한 가치다.

    더 이상 탐정을 불법 흥신소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체계적 교육을 받고 법과 윤리를 준수하며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전문가가 바로 진정한 탐정이다. 여성 탐정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배우자 외도로 고통받는 이에게,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이에게 여성 탐정은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있다. 공권력이 닿지 않는 민생의 사각지대에서, 섬세함과 공감 능력을 전문성으로 갖춘 여성 탐정들이 새로운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100세 시대, 여성들에게 제2의 인생을 여는 전문직으로써 탐정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학박사, 美경영학박사 ▲前총경, 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단장, K-탐정연구소장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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