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알박기’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22-02-14 11: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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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 고하승



    개발 예정지의 땅 일부를 먼저 사들인 뒤 사업자에게 고가로 되파는 부동산 투기 수법을 속칭 '알박기'라고 한다.


    이는 용지의 소유권 100%를 확보하지 않으면 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토지 일부만 확보한 후 매각을 거부하며 버티다 결국에는 시세보다 수십배나 비싸게 파는 악랄한 투기행위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가 신축될 것으로 알려진 곳의 부지를 미리 사뒀다가 아파트를 신축하기 위해 부지 소유권을 확보해야 하는 주택조합에 거액을 받고 파는 것이다.


    땅에 알을 박아놓고 그것이 황금알로 변하기를 기다리는 행위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 바로 ‘알박기’다. 정치권에서도 종종 그런 행위가 발생한다.


    채 10%도 되지 않는 낮은 지지율을 가진 정당이 ‘알박기’를 해놓고 선거 때가 되면 거대 정당과 협상에 나서 과도한 지분을 챙겨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여론조사 경선 방식’으로 단일화를 제안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딱 그 모양이다.


    안 후보는 대선후보 등록 첫날 후보등록 절차를 마친 뒤 유튜브로 생중계된 특별 기자 회견에서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즉 구체제 종식과 국민 통합의 길을 가기 위해 야권후보 단일화를 제안한다”라며 ‘여론조사 국민경선’ 방식을 제안했다.


    문제는 여론조사 국민경선 방식은 ‘역선택’으로 인해 민의가 왜곡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팟캐스트 '나는꼼수다'에 참여했던 방송인 김용민씨는 안철수 후보의 기자 회견 후 페이스북을 통해 "윤-안 여론조사 단일화가 합의된다면 우리 지지자들이 대거 조사에 참여해 당근 안철수를 밀고, 이 내용 너도나도 쓰고 실행에 옮기자"라고 선동했다.


    김 씨가 말한 ‘우리 지지자’들이란 바로 ‘이재명 지지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재명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 사실을 널리 알리고 적극적으로 여론조사에 참여해서 안철수를 밀어주자는 거다. 물론 그들이 안철수의 당선을 바라고 그러는 것은 아닐 게다.

     

    이재명 후보가 상대하기 손쉬운 후보를 고르자는 의미일 게다.


    여론조사를 한다면 당연히 그런 부작용을 제거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고 하는 게 정상이고 상식이다. 즉 이재명 지지자들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문항을 만들어 놓고 여론조사를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막무가내다.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적용한 문항과 방식을 그대로 하자는 것이다.


    이재명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여론이 압도적이고, 그런 민심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14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 역시 그렇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11~12일 전국 1005명을 대상으로 차기대선 후보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윤석열 후보는 43.5%이고, 안철수 후보는 고작 7.8%에 불과했다. 무려 5배 이상 지지율에서 격차 벌어졌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8.5%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따라서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안철수 후보가 이기기 어렵다. 그래서 변칙적인 방법을 쓰겠다는 생각에서 ‘역선택’이 가능한 여론조사 경선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민심에 반하는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승자독식’의 여론조사 경선 방식을 제안해 놓고 뜬금없이 “누가 후보가 되든 서로의 러닝메이트가 되면 압도적 승리를 끌어낼 수 있다”라고 강조한 것은 어떤 의도인가.


    경선하겠다는 건 사실상 죽기 살기로 ‘싸우겠다’라는 선언이다. 그렇게 싸우고 난 후에 러닝메이트가 되자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될 것이고 어쩌면 승자를 지지하기보다는 이재명 지지 쪽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경선에서 패하더라도 ‘러닝메이트’라는 명분으로 무엇인가를 윤석열 후보 쪽에 요구할 심산이라면 아서라.


    국민은 윤 후보와 안 후보가 ‘협치’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단일후보가 되어 ‘제2의 DJP 연합’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그 과정이 역선택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여론조사 경선이라면 반대다. 그런 사악한 방식을 고집한다면 결코 러닝메이트가 될 수도 없다. 안철수의 알박기가 어쩌면 국민에겐 독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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