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안교재의 “싸가지는 아름다워!”

    칼럼 / 시민일보 / 2025-12-07 12: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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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도성에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이 있다.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흥지문. 이 네 성문의 이름은 인·의·예·지 네 가지를 상징한다.

    이 네 가지 덕목은 성안에 사는 사람들의 품격이자 조선 사대부의 자존심이었다.
    동대문의 ‘인(仁)’은 백성을 보살핀다는 뜻,
    서대문의 ‘의(義)’는 바르고 정의롭다는 뜻,
    남대문의 ‘예(禮)’는 예를 숭상한다는 뜻,
    북대문의 ‘지(智)’는 소리 없이 다스리는 지혜를 뜻했다.

    즉 인의예지를 알고 행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는 자존심으로 성벽을 쌓아 올린 것이다.

    그리고 도성 한가운데 보신각을 세우고 큰 종을 매달아 때때로 종을 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장안의 사람들은 이 4가지 덕목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보신각의 ‘신(信)’자는 믿음을 뜻했고, 도성의 중심에 보신각을 세운 것은 인의예지를 갖춘 자의 마음 깊은 곳에는 신의가 있다는 상징이었다.

    이 4가지 덕목은 사대부들의 자존감을 뜻하는 은어로 사용되며 ‘4가지’로 불렸고, 그 그 4가지가 경음화되며 ‘싸가지’라는 다소 발칙한 단어로 변이되어 통용되었다.

    이를 귀동냥으로 들은 성밖 사람들은 이를 오해해 “싹수가 없다”, “싹이 노랗다”라는 뜻으로 엉뚱하게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잣거리에서 흔히 듣는 “싸가지”는 사대문의 ‘4가지’와는 근본이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 장안도 아닌 수원 태생의 씩씩한 사내가 "4가지론을 인생의 지표로 삼아 성공적인 삶을 살고있다"며 격한 ‘싸가지 선언’을 했다고 한다.

    나름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그가 내민 명함에는 주식회사 유연 대표 안교재로 쓰여 있었다.

    수원에서 태어나 유신고를 졸업하고, 단국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반도체 생산라인에 필수적인 화학제품을 수출하는 회사를 경영하며 2025년에 ‘3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고 경기도 조정협회장을 두번째 역임하고 있다.

    “싸가지 있게 살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말 듣고 성공하는 사람 봤습니까?”

    싸가지 없는 사람이 망하는 경우를 많이 봤지만 ‘4가지 있는 사람이라 성공했다’는 말도 드물어서 신선했다.

    “말은 쉽지만 싸가지 있게 사는 건 참 어렵습니다. 사람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경계를 지키는 의연함을 갖추고, 예의를 법처럼 지키고, 아는 만큼 지혜롭게 전략을 짜고 전술적으로 실행하면서 나 뿐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워야 하니…” 농담처럼 던져봤다.

    “홍익인간이네요!”

    종교 수행자보다 더 높은 경지가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한 표정으로 10초쯤 있다가 말했다.

    “그래서 폭망 할때도 있었지요. '세상이 흐린 강물 건너기' 라는 걸 몰랐으니까요. 동요처럼 '퐁당퐁당 누나 몰래 돌을 던지면 건너편 누나가 웃어줄 것' 이라 믿던 그 시절… 그렇게 돌만 던지다가 '리먼' 사태를 만나 소낙비를 한 번 쎄게 맞았지요.”

    전공은 화학이지만 그의 재능은 언어에 있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일본 회사에 다니며 답답해서 일본어를 익혔고, 중국 바이어가 생기자 중국어를 배웠다.

    그는 전공보다 언어 영역에서 오히려 화학적공유결합을 이뤘다.

    1995년 3월, 주식회사 유연을 세운 안교재 대표는 언어적 재능으로 각국 사람들과 화학적 결합을 이뤄 회사를 성장시켰다.

    일본 바이어들은 싸가지 있는 안 대표와 존중의 거래를 이어갔고 함께 성장의 길을 달렸다.

    그 바이어들 중 신뢰할 수 있는  일본 친구와는 그의 조부(일본 해군 제독 출신)가 남긴 ‘보물지도’를 믿고 실제 보물선 탐사에 나서기도 했다.

    2013년이었다.

    “금화를 가득 실은 보물선 탐사 성공!”

    이 헤드라인으로 9시 뉴스에 등장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싸가지 있게 산 보답이 왔다고 생각했죠. 바다 밑에서 보물선이 발견되고 수 톤의 동전이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당시 언론은 ‘황금 보물선’이라는 자극적 제목을 달아 탑뉴스로 올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보물선인 줄 알았는데 ‘고물선’이었습니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열흘 넘게 바닷 속 뻘을 걷어내며 수톤의 동전을 퍼올렸지만 금화는 단 한개도 없었다.

    ‘고물선’ 탐사 비용은 5억원이 넘었고, 퍼올린 니켈동전은 수천만원의 가치도 없어 지금도 창고에 보관 중이다.

    그는 이 동전을 활용해 100억원 규모의 대중국 아트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 창고비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2차 대전 말, 일본이 중국에서 약탈한 금을 싣고 도망치다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한 군함이 있다는 기록, 그리고 일본 바이어 조부가 준 보물지도, 그 모든 것은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탐사 비용 전액을 빚으로 안고 회사로 돌아온 안 대표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싸가지 있게 다시 정진했다.

    “사면초가를 경험했죠. 보물선 사건보다 훨씬 큰 일을 2010년에 겪어 봤거든요. 엎친데 덥치니까 혼이 나가더라구요. 그래도 싸가지를 지켰지요.”

    그는 러시아군 장갑차를 타고 시베리아 벌판을 가르며 원시 평원에 원목가공 공장을 세우는 일을 3년간 추진했다가 수업료 40억원을 내고 포기했다.

    혹한 속에서는 눈물도 얼음이 되어  떨어지고, 적이 된 사람도 함께 있어야 죽지 않는다는 원리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곳에선 싸우다가 화가 나면 밖으로 뛰쳐나간다고 한다. 싸우고 찢어지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눈보라 속을 화나는 만큼 달리다 돌아설 때면 “너무 멀리 와 버렸구나. 화를 조금만 냈어야 했는데.”

    그때, 온 길을 되돌아 가며 깨달음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싸가지 있게 살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귀히 여기고, 바른 길을 가며, 언제든 정의의 편에 서며, 예의를 법처럼 알고, 믿음을 마음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는가? 묻고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기도를 하십니까?”
    “예, 때때로.”
    “저도 그렇습니다. 후회도 하고, 회개는 더 많이 합니다. 하지만 기도가 간절해도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기 어렵고, 미움이 연민으로 변하기도 어렵지요. 그래도 계속 합니다” 

    그의 아내는 딱 한마디밖에 안했다.

    "존경할 수 있는 남자!"라고, 

    마누라한테 존경받고 싸가지 있게 살기 참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안교재는 ‘싸가지 있는 남자’로 참 열심히 산다!

    유럽 출정을 떠나기 전의 외로운 목동, 칭기스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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